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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壇席]~단석[袒裼]~단석괴[檀石槐]~단석폭호[袒裼暴虎]


단석[斷石]  골짜기가 갈라진 것을 가리킨다.

단석[丹石]  금강산 영원동 입구의 명경대(明鏡臺) 부근에 있는 바위를 가리킨다. <本庵續集 卷1 明鏡臺> <疏菴集 卷5 沖谷幽居序>

단석[壇席]  단을 쌓아 좌석을 설치하는 것으로, 예우(禮遇)가 융숭함을 이른다.

단석[袒裼]  웃옷[上衣]의 왼쪽 소매를 벗어서 내의(內衣)인 석의(裼衣)를 드러내는 것이다. 단(袒)은 본래 웃통을 벗는다는 뜻으로 상반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가리키며, 석(裼)은 본래 갖옷[裘]이나 갈의(葛衣)의 위에 덧입는 옷인 석의를 가리키는데, 또한 이 둘은 모두 웃옷의 앞자락을 열어 왼쪽 소매를 벗어서 그것을 앞자락의 오른쪽에 꽂고 석의를 드러내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석의는 또한 중의(中衣)라고도 한다.

단석[袒裼]  웃옷을 벗어서 맨몸을 드러내는 것으로, 예의가 없음을 뜻한다.

단석괴[檀石槐]  선비족의 부족장이다. 동한(東漢) 때 흉노(凶奴)의 옛 땅을 모두 점거한 뒤, 동부(東部)・중부(中部)・서부(西部)의 세 부로 편성하고 각각 대인(大人)을 두어 관할하게 하였다. 한나라에서 왕으로 봉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한번은 진수(秦水)에 물고기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잡지 못하다가, 왜인(倭人)들이 그물질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는 왜국을 공격하여 1000여 세대를 진수 옆으로 옮긴 다음 고기를 잡아 군량을 보충하게 하였다. <後漢書 卷90 烏桓鮮卑列傳>

단석산[斷石山]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산이다. 신라 때 화랑들의 수련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단석이관지[袒裼而觀之]  진 공자(晉公子) 중이(重耳)가 망명하여 조(曹)나라에 갔을 때 조 공공(曹 共公)은 중이(重耳)의 갈비뼈가 붙어 있는 통뼈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알몸을 보려고 그가 목욕할 때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본 일을 말한다.

단석폭호 풍부이후가[袒裼暴虎 馮婦而後可]  단석(袒裼)은 소매를 걷어붙임이고, 폭호(暴虎)는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음이다. 이런 일은 풍부(馮婦) 같은 용력(勇力)이 있은 뒤에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풍부(馮婦)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용사(勇士)이다. <孟子 盡心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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