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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소[丹霄]~단소[單疏]~단소[丹蘇]~단소공파백곡[段韶攻破柏谷]


단소[丹霄]  단소(丹霄)는 구소(九霄)의 하나로,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을 이르는데, 제왕이 거처하는 곳인 도성 또는 조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두보(杜甫)의 증촉승여구사형(贈蜀僧閭丘師兄)에 “봉황이 숨자 단소도 어둑어둑, 용이 떠나자 백수도 흐릿흐릿.[鳳藏丹霄暮 龍去白水渾]”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단소[單疏]  옷이나 음식 등이 간소한 모양이다.

단소[丹蘇]  자소(紫蘇). 그 잎이 땀을 내며 속을 조화시키는 효능이 있어 해수(咳嗽), 곽란(癨亂), 각기(脚氣), 심복통(心腹痛) 등을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된다.

단소결진 이대돌궐지지[段韶結陣 以待突厥之至]  단소(段昭)가 진영(陣營)을 결성하고서 돌궐(突厥)이 오기를 기다림. 단소(段韶)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북제(北齊)의 명장(名將)이다. 562년에 북주(北周)가 강이(羌夷)・돌궐(突厥)과 연합하여 낙양(洛陽)을 습격하자, 북제(北齊)의 세조(世祖) 무성제(武成帝)는 단소(段韶)로 하여금 이들을 막게 하였다. 이때 마침 큰 눈이 내렸는데, 단소(段韶)는 휘하의 기병 200명을 거느리고 제군(諸軍)과 함께 망판(邙阪)에 올라가 북주군(北周軍)의 형세를 관찰한 다음 대화곡(大和谷)에 이르러 북주군(北周軍)과 조우하였다. 단소(段韶)는 즉시 파발을 띄워 제영(諸營)에 통보하고 병마(兵馬)를 추가로 모아서 곧장 제장(諸將)들과 함께 포진(布陣)하고 적을 기다렸다. 북주군(北周軍)은 보병(步兵)을 앞세우고 서쪽에서 몰려와 북제(北齊)의 진영 가까이 접근하였다. 북제(北齊)의 여러 장수들은 바로 맞아 공격하자고 주장하였으나, 단소(段韶)는 “보병의 기력이나 기세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지금은 백설(白雪)도 깊이 쌓였으므로 공격하기에는 좋은 조건이 아니다. 진중(陣中)에서 대기하라. 적은 피로하고 아군은 힘이 남아있으므로 적을 격파하기는 쉬운 일이다.”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북주군(北周軍)이 보병을 선두로 하여 공격하자, 단소(段韶)는 기마(騎馬)를 이용하여 상대하면서 혹은 후퇴하고 혹은 유인하기를 거듭하다가, 적의 힘이 피폐하기를 기다려 마침내 일제히 말에서 내려 단병접전(短兵接戰)을 벌이니, 북주군(北周軍)이 크게 궤멸되었다. <北齊書 권16 段韶列傳>

단소공파백곡[段韶攻破柏谷]  단소(段韶)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북제(北齊)의 장수이다. 북제(北齊) 후주(後主) 무평(武平) 2년(571) 북주군(北周軍)이 침범해 오자, 단소(段韶)와 우승상(右丞相) 곡률광(斛律光), 태위(太尉) 난릉왕(蘭陵王) 장공(長恭)이 이를 막기 위하여 서쪽 변경의 백곡성(柏谷城)에 이르렀는데, 백곡성은 석성(石城)이 천 길이나 되는 천혜의 요새로 북제군(北齊軍)은 감히 이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단소가 “분하(汾河) 북쪽과 황하(黃河) 동쪽은 형세로 보아 우리나라의 소유여야 하니, 만약 백곡(柏谷)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사람의 고질병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생각하건대 저들의 구원병은 남쪽 길로 올 수밖에 없으니, 지금 이 길을 끊으면 구원병이 올 수 없을 것이다. 또 성의 형세가 비록 높다 하나 그 안이 매우 좁으니, 화노(火弩)로 집중 공격하면 하루아침에 함락시킬 수 있다.”라고 계책을 내었다. 북제군(北齊軍)이 이 계책에 따라 북을 치면서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고 북주(北周)의 설경례(薛敬禮)를 사로잡고 다수의 적을 포로로 잡았다. <北齊書 권16 段韶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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