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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번[幢幡]~당벌[黨閥]~당벽[當璧]~당병삼변[唐兵三變]


당번[幢幡]  당과 번을 겹쳐 만든 기(旗)를 말한다.

당번[幢旛]  불전에 세우는 깃발로, 부처의 위력을 표시하고 도량임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당번[幢幡]  큰절의 문 앞에 세우는 깃대인 당(幢)과 설법할 때 절 안에 세우는 깃대인 번(幡)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당벌[黨閥]  같은 당파(黨派)의 사람들이 단결하여 다른 당을 배척(排斥)하는 일, 또는 그런 목적(目的)으로 결합(結合)된 당파(黨派)의 집단(集團)을 이른다. 당동벌이(黨同伐異).

당벽[當璧]  구슬 자리를 당하였다는 것은 임금이 될 조짐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3년 조에 “초(楚) 나라 공왕(恭王)이 적자(嫡子)가 없고 다만 총애하는 아들 다섯 명이 있어 적자를 세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신(神)들에게 망(望) 제사를 지낼 적에 사당인 태실(太室)의 뜰에다 구슬을 묻어 놓고는 다섯 아들이 차례로 들어와 절을 하게 하고, 그중에 구슬을 묻어 놓은 자리에서 절하는 자를 적자로 세우기로 하였다. 이때 평왕(平王)은 나이가 어리므로 궁녀가 안고 들어와 재배(再拜)를 하였는데 두 번 다 구슬의 끈이 있는 곳을 밟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평왕이 즉위했다.”라고 하였다. 전하여 당벽(當璧)은 임금이 될 운명(運命)을 타고난 사람을 이른다.

당병삼변[唐兵三變]  당(唐)나라 병제(兵制)가 세 번 변함. 신당서(新唐書) 병지(兵志)에 “당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200여 년 동안 병제(兵制)가 세 번 변하였으니, 처음에 융성했을 때에는 부병(府兵)이 있었고, 부병(府兵)이 뒤에 폐해지자 확기(彍騎)가 있었고, 확기(彍騎)가 또 폐해지자 방진(方鎭)의 군병이 융성하였다.[蓋唐有天下二百餘年 而兵之大勢三變 其始盛時有府兵 府兵後廢而爲彍騎 彍騎又廢 而方鎭之兵盛矣]”라고 하였으므로, 이에 의거하여 당나라의 병제(兵制)가 세 번 변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 초기부터 수도 방위를 위해 금군(禁軍)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절충부(折衝府)를 설치하고 국경에는 방진(方鎭)을 설치하여, 각 지역에 따라 군제를 달리하였다. 이후 점차 부병제(府兵制)가 무너지면서 현종(玄宗) 때 장열(張說)의 건의로 금군(禁軍)의 정예화를 위해 모병제(募兵制)로 전환한 것이 확기(彍騎)이고, 국경에만 있던 진이 점차 내륙의 지방까지 확대되고 절도사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중앙의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자 방진(方鎭)의 군병이 융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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