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비[黨比] 붕당을 지어 서로 어울린다는 말이다. 한(漢) 왕일(王逸)의 구사(九思) 민상(憫上)에 “뇌물 받고 법을 어긴 이들은 파당을 짓고, 올곧고 선량한 이들은 고독하다네.[貪枉兮黨比 貞良兮煢獨]”라고 하였다.
당비[黨碑] 당인비(黨人碑)로, 북송 휘종(北宋徽宗) 때에 간신 채경(蔡京) 등이 원우(元祐) 연간의 명신인 사마광(司馬光), 여공저(呂公著), 소식(蘇軾), 정이(程頤) 등에게 붕당을 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309명의 이름을 새겨 태학의 단례문(端禮門) 앞에 세운 비석인데, 당적비(黨籍碑)라고도 하였다.
당비[黨碑] 당인비(黨人碑)를 말한다. 송 철종(宋哲宗) 원우(元祐) 원년에 사마광(司馬光)이 재상이 되어 신종(神宗) 희령(熙寧)·원풍(元豐) 연간에 왕안석(王安石)이 시행한 신법(新法)을 전부 폐지하고 옛날의 제도를 회복하였다. 그 뒤 소성(紹聖) 원년에 장돈(章惇)이 재상이 되어 희령·원풍의 제도를 회복하고 사마광을 간당(奸黨)으로 지척하여 조정에서 축출하였다. 휘종(徽宗) 숭녕(崇寧) 원년에 채경(蔡京)이 재상이 되어 소성 연간의 법을 전부 회복한 다음 단례문(端禮門)에다 신법을 반대한 사마광 등 3백 9명의 죄상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을 말한다.
당비[黨碑] 원우당인비(元祐黨人碑)를 말한다. 1102년에 송 휘종(宋徽宗)이 채경(蔡京)을 정승으로 등용하고 왕안석(王安石)이 제창했던 신법(新法)을 받듦과 동시에 원우 구당(元祐舊黨)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하니 채경이 문언박(文彦博)·사마광(司馬光)·소식(蘇軾) 등 120명을 나열하고 그중에 신당(新黨) 육전(陸佃) 등을 포함하여 모두 간당이라 지목하자 휘종이 글씨로 그들의 성명을 돌에 새겨 단례문(端禮門)과 각 지방 관청에 세웠다. <宋史 卷19 徽宗本紀>
당비[黨碑] 일정한 사람들을 간당(奸黨)으로 몰아서 그들의 이름과 죄상을 새겨놓은 비(碑)를 말한다.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 사마광(司馬光)이 재상이 되어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폐지하고 구법을 회복시켰는데, 그 후 장돈(章惇)과 채경(蔡京)이 차례로 재상이 되어 다시 왕안석의 신법을 환원하고 심지어 단례문(端禮門)에다 비석을 세워 사마광 등 309명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비석이 자연 마모되자, 그들의 후손이 선조의 이름을 이 비석에다 다시 열거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거듭 모각하였다. <宋史 卷19 徽宗紀>
당비거철[螳臂拒轍] 자기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강적을 대항함이 마치 사마귀가 성난 팔로 수레바퀴를 막음과 같다는 말이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거백옥(蘧伯玉)이 자신의 재능을 헤아리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람을 사마귀에 비유하여 “너는 사마귀를 모르느냐?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하고 앞발을 들어 수레바퀴에 맞서니,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汝不知夫螳蜋乎 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라고 하였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제 약한 힘을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대적(大敵)과 맞서거나 큰일을 담당하는 것을 비유한다.
당비당거[螳臂當車] 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수레를 막다. 자신의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영웅호걸로 형세하거나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사태나 세력에 대항하려는 무모한 행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비당차[螳臂當車] 당비당거. 당랑(螳螂)이 자기의 힘을 모르고 덤비는 것. 당랑은 사마귀를 이른다. 사마귀가 앞발을 치켜들고 수레에 덤벼들어서 박살나듯이 자기의 힘을 모르면서 덤비다 실패하는 것을 말한다. 당랑지부(螳螂之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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