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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현[唐賢]~당현종[唐玄宗]~당현종용이임보[唐玄宗用李林甫]


당현[唐賢]  당현은 당대(唐代)의 현신(賢臣)들을 가리킨다.

당현종[唐玄宗]  685~762. 재위 712~756. 무측천(武則天)을 포함했을 때 당나라 제7대 임금 이륭기(李隆基)로, 시호는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이며 현종(玄宗)은 묘호이다. 시호로 인해 당명황(唐明皇)이라고도 칭한다. 제6대 임금 예종(睿宗) 이단(李旦)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두황후(竇皇后)이다. 중종(中宗) 당륭(唐隆) 원년(710)에 거병하여 위황후(韋皇后)와 안락공주(安樂公主)를 제거하고 부친인 예종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같은 해 황태자에 봉해지고, 2년 뒤인 712년 8월 25일에 예종의 양위로 즉위하였다. 태평공주(太平公主)를 제거하고 요숭(姚崇)·송경(宋璟)·장열(張說)·장구령(張九齡) 등을 재상으로 임용하여 조운(漕運) 개량과 둔전(屯田) 개발 등 내정을 정비하고 밖으로는 동돌궐(東突厥)·토번(吐蕃)·거란(契丹) 등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여 개원지치(開元之治)를 이루었다. 만년에 양귀비(楊貴妃)에 빠져 국정을 등한시하고 권신 이임보(李林甫), 양국충(楊國忠) 등을 총애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결국 755년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맞아 사천(四川)으로 파천하였으며, 이듬해 태자 이형(李亨: 숙종肅宗)에게 양위하고 태상황(太上皇)으로 물러났다.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뒤 78세를 일기로 병사(病死)하였다.

당현종[唐玄宗]  685~762(재위 712∼756). 당(唐)나라 6대 황제 이융기(李隆基)이다.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로, 712년에 예종의 양위로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괄호(括戶) 정책을 실시하여 부역에서 빠졌던 호구(戶口)를 파악하게 하였으며, 조세·조운·법제 등을 개혁하여 중앙 정부의 재정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천보(天寶) 연간(742∼756)으로 접어들면서 간신들을 중용하여 국정을 그르쳤다.

당현종[唐玄宗]  당현종(唐玄宗)은 즉위한 초기에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을 재상으로 삼고 인재를 발탁하여 경제를 일으키고 주변국들의 조공을 받는 등 이른바 개원(開元)의 치세(治世)를 이루었는데, 양 귀비(楊貴妃)에 미혹되고 이임보(李林甫)와 양국충(楊國忠)을 신임하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초래하였다. 당 덕종(唐德宗) 역시 즉위 초기에는 재상 양염(楊炎)의 의견을 받아들여 양세법(兩稅法)을 시행하는 등 다스림에 힘썼으나, 환관들을 등용함에 따라 정사가 어지러워지니, 반란군이 일어나 장안(長安)을 점거하여 봉천(奉天)으로 피난하는 일까지 있었다.

당현종용이임보 당덕종용노기[唐玄宗用李林甫 唐德宗用盧杞]  이임보(李林甫 683~752)와 노기(盧杞 ?~785)는 모두 당(唐)나라 때 재상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간신(奸臣)들이다. 이임보(李林甫)는 현종(玄宗) 때 재상이 되어 양국충(楊國忠)과 함께 국정을 전횡하고, 끝내는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을 촉발하여 천하를 피폐하게 한 자이다. 노기(盧杞)는 자(字)가 자량(子良)으로 현종(玄宗) 때 명상(名相)이었던 노회신(盧懷愼)의 손자인데, 성품이 음험하고 간사하여 덕종(德宗) 때 재상으로 발탁되자 수많은 충신들을 모함하여 죽였으며, 황제에게 형명학(刑名學)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권하여 가혹한 정사(政事)를 펴서, 마침내 주차(朱泚)의 난이 일어나 덕종(德宗)이 봉천(奉天)으로 파천(播遷)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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