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형[唐衡] 당형(唐衡)은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후(侯)에 봉해져 국정을 문란하게 한 다섯 환관(宦官) 중의 한 사람인 여양후(汝陽侯)를 말한다. 순욱(荀勗)은 4세 때 권세를 휘두르던 환관 당형(唐衡)의 딸과 혼인하기로 결정되었는데, 두고두고 비난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당형[唐衡] 후한 환제 때 권력을 전횡한 환관으로 당시 권신 양기(梁冀)를 주륙하고 권력을 잡았는데, 교만 방자한데다가 백성들을 심하게 수탈하여 악명이 높았다. 당형이 자신의 딸을 순욱(荀勗)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자 순욱의 아버지 순곤(荀緄)이 당형의 권세를 생각하여 순욱에게 당형의 딸을 맞이하게 했다는 설이 있으나, 삼국지(三國志)에 주석한 배송지(裴松之)는 이를 부정하였다.
당형중사[堂兄中舍] 소식(蘇軾)의 답진태허서(答秦太虛書)에 보인다. 당형(堂兄)은 종형(從兄)이며, 중사(中舍)는 관직명으로 태자중사(太子中舍)이다. 당형(堂兄)은 소식(蘇軾)의 백부인 소환(蘇渙)의 맏아들 불기(不欺)를 가리킨 것으로 불기(不欺)의 자(字)는 자정(子定)이며, 벼슬은 태자중사(太子中舍)와 감성도량료(監成都糧料)를 지냈다.
당형천[唐荊川] 당순지(唐順之). 1507~1560년. 당순지는 명(明)나라의 양명학자로서, 호(號)가 형천(荊川)이다. 한림원(翰林院)의 편수(編修)로서 당순지는 역대실록(歷代實錄)의 교정을 담당했으며, 교육과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왕신중(王愼中), 귀유광(歸有光)과 함께 명나라 고문파(古文派)로 꼽히는 문학가이기도 하다. 저서에는 형천집(荊川集)이 있다.
당형천[唐荊川] 명(明)나라 학자 당순지(唐順之 1507~1560)를 이른다. 산문가(散文家)이자 문학이론가(文學理論家)이다. 자는 응덕(應德), 호는 형천(荊川)이며, 무진(武進) 사람이다. 가정(嘉靖) 8년(1529)에 회시(會試)에 장원하고 편수(編修)·병부랑중(兵部郞中)·우첨도어사(右僉都御史) 등을 역임하였다. 천문(天文)·지리(地理)·음악(音樂)·수학(數學)·역법(曆法)·병법(兵法) 등을 연구하였으며, 고문(古文)에 능하여 왕신중(王愼中)·모곤(茅坤)·귀유광(歸有光) 등과 함께 당송파(唐宋派)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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