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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무[戴竿舞], 대간사충[大姦似忠], 대간특[大姦慝]


대간무[戴竿舞]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근정루(勤政樓)에 올라 풍악을 갖추고 온갖 기예(技藝)를 벌이게 했는데, 여우(女優) 대랑(大娘)이 대간무를 잘 추었다. 즉, 머리 위에 긴 장대를 이고 목상(木床)을 올려놓은 다음 여러 어린애가 붉은 절모(節旄)를 들고 그 위에 올라서면 춤을 추어 음절(音節)을 맞춘다.”라고 하였다.

대간사충[大姦似忠]  크게 간사(奸邪)한 사람은 그 아첨(阿諂)하는 수단(手段)이 매우 교묘(巧妙)하므로 흡사(恰似) 크게 충성(忠誠)된 사람과 같이 보임. 악한 사람이 본성을 숨기고 충신처럼 보인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송나라 영종(英宗)의 뒤를 이은 신종(神宗)은 영종이 이루지 못한 개혁을 계속 진행시켰는데, 어린 신종을 도와 개혁을 추진한 인물이 왕안석(王安石)이다. 왕안석은 신종의 신임 아래 기존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법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이 법은 기득권을 가진 지주와 부호, 황실, 귀족 관료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가진 자로부터 없는 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의 재편을 노린다는 구실이었다. 그 맨 앞에 선 사람이 어사중승(御史中丞) 여회(呂誨)였다. 여회는 왕안석이 재상에 취임하는 것부터 반대했던 사람으로, 신법이 계속 만들어지자 마침내 신종에게 왕안석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는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과 비슷하고, 큰 속임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든다[大姦似忠 大詐似信]”고 하면서, 겉으로는 질박하게 보이면서도 가슴 속에는 간사한 음모가 있으며, 교만하고 음험하여 황실을 업신여기고 남을 해치려 하는 간특한 인간이라고 왕안석을 탄핵하였다. 그 후에도 신종은 왕안석에 대한 신임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여회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종이 죽고, 왕안석도 물러나 은퇴하자 보수 반동 세력이 다시 득세하여 개혁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송사(宋史)>

대간특[大姦慝]  소순(蘇洵)의 가우집(嘉祐集) 권9 변간론(辨姦論)에 “지금 어떤 사람이 입으로는 공자(孔子)와 노자(老子)의 말을 외고, 몸으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행실을 밟는데, 명예(名譽)를 좋아하는 선비와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을 거두어 불러들여 서로 더불어 언어(言語)를 조작하고 사사로이 명자(名字)를 세워 안연(顔淵)과 맹가(孟軻)가 다시 나왔다고 하나, 음험하고 잔인하며 험악하고 악독하여 남들과는 의취(意趣)가 다르다. 이는 왕연(王衍)과 노기(盧杞)가 합쳐서 한 사람이 된 것이니 그 화(禍)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얼굴이 더러워지면 씻는 것을 잊지 않고, 옷이 더러워지면 빠는 것을 잊지 않으니, 이것은 사람의 지극한 정(情)이다. 지금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포로의 옷을 입고 개·돼지의 음식을 먹으며 죄수의 머리털에 상(喪)을 당한 사람의 낯짝으로 시경(詩經)·서경(書經)을 담론하니, 이것이 어찌 그 정이겠는가? 범사가 사람의 정에 가깝지 않은 자는 크게 간특(姦慝)하지 않음이 드문데, 수조(豎刁)·역아(易牙)·개방(開方)이 이런 작자들이다. 세상을 덮는 명성으로 형체가 드러나지 않은 근심을 저지르니, 비록 다스리기를 원하는 임금과 현자(賢者)를 좋아하는 재상이 있어서 오히려 천거하여 그들을 쓴다 해도 반드시 천하(天下)의 근심이 될 것임은 의심할 것이 없으니, 그 해독이 다만 앞의 두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용병(用兵)에 뛰어난 자는 혁혁(赫赫)한 공(功)이 없다.”라 하였다. 만약 이러한 사람이 등용되지 않으면 내 말이 잘못된 것이고, 이러한 사람이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탄식을 하면, 누가 화(禍)가 여기까지 이를 줄 알겠는가? 그렇지 않아 이러한 사람이 등용되면 천하(天下)는 그 화를 입을 것이고, 나는 식견 있다는 명예를 얻을 것이니 슬프다![今有人, 口誦孔老之言, 身履夷齊之行, 收召好名之士不得志之人, 相與造作言語, 私立名字, 以爲顏淵孟軻復出, 而陰賊險狠, 與人異趣. 是王衍盧杞合而爲一人也. 其禍豈可勝言哉? 夫面垢不忘洗, 衣垢不忘浣. 此人之至情也. 今也不然, 衣臣虜之衣. 食犬彘之食, 囚首喪面, 而談詩書, 此豈其情也哉? 凡事之不近人情者, 鮮不爲大奸慝, 豎刁易牙開方是也. 以蓋世之名, 而濟其未形之患. 雖有願治之主, 好賢之相, 猶將舉而用之. 則其爲天下患, 必然而無疑者, 非特二子之比也. 孫子曰 : ‘善用兵者, 無赫赫之功.’ 使斯人而不用也, 則吾言爲過, 而斯人有不遇之嘆. 孰知禍之至於此哉? 不然. 天下將被其禍, 而吾獲知言之名, 悲夫!]”라고 하였다. 소순은 왕연(王衍)과 노기(盧杞)를 예로 들어 겉으로 공맹을 논하면서 속으로 인정에 어긋나는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 대간특(大姦慝)이 되어 천하에 재앙을 입힌다는 논리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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