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고리[大冠高履] 커다란 관(冠)과 높은 신발.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광무제(光武帝)는 진홍색 옷에 대관(大冠)을 썼다.[絳衣大冠]”라고 하였다. 고리(高履)는 굽이 높은 나막신[高齒屐]과 같다.
대관령[大關嶺] 서울과 영동을 잇는 태백산맥의 관문으로 해발고도 832m에 고개의 길이가 13km에 이른다. 2002년 이후 터널구간이 생겨 통행에 어려움이 사라졌다. 대관령을 경계로 동쪽은 남대천이 강릉을 지나 동해로 흐르며, 서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송천(松川)이 된다.
대관양[大官羊] 대관(大官: 황제의 음식을 공급하는 주방廚房)의 양(羊). 황정견(黃庭堅)의 시 사송년학원간아(謝送碾壑源揀芽)에 “천록각 교서랑을 어여쁘게 보셨는지, 몸소 집으로 사람 보내 차를 나눠주시니. 양고기 드시는 높은 분들 병차를 잘 알고 있겠지만, 하찮은 관리들 귀한 떡차 맛을 모르네.[肯憐天祿校書郞, 親勅家庭遣分似. 春風飽識大官羊, 不慣腐儒湯餠腸.]”라고 하였다. 고관(高官)으로서 많은 녹봉(祿俸)을 받는 사람을 육식자(肉食者)라 칭한 데서 온 말이다. 특히 북송(北宋) 말기에는 소식(蘇軾)의 문장(文章)을 매우 숭상하여 그 문장에 익숙한 사람은 벼슬길이 잘 트였으므로, 당시에 “소식의 문장에 익숙하면 양육을 먹게 되고, 소식의 문장에 서투르면 나물국만 먹게 된다.[蘇文熟 喫羊肉 蘇文生喫菜羹]”는 한 말이 있기도 하였다.
대관장영[大冠長纓] 큰 갓과 긴 갓끈을 이른다. 예문유취(藝文類聚)에 “한서(漢書)에 이르기를, 종군(終軍)이 글월을 올려 청하되 ‘큰 갓[大冠]과 긴 갓 끈[長纓]을 받아 가지고, 남월왕(南越王)을 묶어다 대궐 아래로 끌어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漢書曰, 終軍上書, 請受大冠長纓, 以羈南越王而致之闕下.]”고 한 데서 보인다.
대관전[大觀殿] 본래 이름은 건덕전(乾德殿)으로 연경궁(延慶宮)에 있다. 고려 제17대 임금 인종(仁宗) 16년(1138) 5월 경술일에 이름을 대관전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高麗史 卷16 仁宗世家2 16年>
대관제물[大觀齊物] 큰 관점은 만물을 하나로 봄. 세상에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는 물론(物論)을 다 같이 가지런하게 본다는 뜻이다. <莊子 齊物論>
대관혈[臺官血] 고려(高麗)의 심양(沈諹)이 충간(忠諫)을 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형신(刑訊)을 받았다. 형신을 받으며 흘린 피가 형구에 묻은 것을 가리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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