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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大農], 대농수형[大農水衡], 대뇌서[大雷書], 대뇌전[大雷電]


대농[大農]  농업과 곡물의 일을 관장했던 관직명으로 전설상의 요임금 때 이미 설치했다고 한다. 삼대세표(三代世表)에 의하면 “주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선조인 후직(后稷) 또한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 ….. 요임금이 그의 현능함을 알고 그를 대농으로 세웠다.[文王之先為後稷, 後稷亦無父而生. ….. 堯知其賢才, 立以為大農.]”고 하였다. 진한(秦漢) 때는 치속내사(治粟內史), 대사농(大司農), 대농령(大農令), 대농승(大農丞) 등의 일괄해서 부른 호칭이다.

대농[大農]  조세와 전곡·염철을 맡은 관아인 대사농(大司農)을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 30권 평준서(平準書)에 “상홍양(桑弘羊)은 치속도위(治粟都尉)를 맡으면서 대농(大農)까지도 겸직해, 완전히 대신한 공근으로 천하의 소금과 철을 관리하게 되었다.[桑弘羊爲治粟都尉, 領大農, 盡代僅筦天下鹽鐵.]”라고 하였다.

대농수형[大農水衡]  대농(大農)과 수형(水衡)은 모두 한(漢)나라 때의 관제로, 대농은 염철(鹽鐵)의 일을 주관하고, 수형은 지택(池澤)의 부세를 맡던 관청이다. 여기서는 나라의 재정을 의미하는 말로 쓰고 있다.

대뇌서[大雷書]  여행지에서 보내는 서찰을 이른다. 대뇌지(大雷池)는 호북성(湖北省) 망강현(望江縣)에 있다. 남조 때 송(宋)나라 시인 포조(鮑照)가 배를 타고 여행하는 도중에 등대뇌안여매서(登大雷岸與妹書)라는 제목으로 여동생에게 서찰을 보냈는데, 그 뒤로 대뇌서(大雷書)는 여행지에서 보내는 서찰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이 되었다.

대뇌전[大雷電]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 가을에 곡식이 익어 수확하기 전에 천둥이 치면서 큰바람이 불어 곡식이 쓰러져 나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에 성왕이 금등(金縢)을 열어 하늘의 변고를 점치려 하다가 우연히 주공이 무왕 때 한 말을 얻어 주공의 충심이 밝혀졌다. 그 뒤 성왕은 주공의 보필을 받아 훌륭한 정사를 폈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금등(金滕)에 “가을에 곡식이 무르익어 아직 수확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크게 천둥 번개를 치고 바람을 불게 하니, 벼가 모두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히므로 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秋大熟未穫, 天大雷電以風, 禾盡偃, 大木斯拔, 邦人大恐.]”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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