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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代糧], 대량[大梁], 대량원군[大良院君], 대량조[大梁造]


대량[代糧]  각 도의 영(營)에 소속된 군사 중에서 출근(出勤)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쌀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선조(宣祖) 대에 와서 이미 그 폐단이 지적되고 있었다.

대량[大梁]  이아(爾雅) 석천에 의하면, 묘성(昴星)의 별칭이다. 서륙(西陸)이라고도 한다.

대량[大梁]  황하(黃河) 남쪽에 있던 도시로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국도[國都]였다.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이다.

대량원군[大良院君]  고려 현종(顯宗)이다. 고려사(高麗史) 권4 현종세가, 고려사절요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등에 “이름은 왕순(王詢)이고 자는 안세(安世)이며 안종(安宗) 왕욱(王郁)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효숙왕태후(孝肅王太后) 황보씨(皇甫氏)이다. 성종(成宗) 11년 임진년(992) 7월 임진일에 태어났다. 나이가 들자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책봉되었다. 열두 살 때에 천추태후가 승려가 되게 하였다. 출가하여 숭교사(崇敎寺)에 있다가 신혈사(神穴寺)로 거처를 옮겨 지냈으므로 신혈소군(神穴小君)이라 불렸다. 꿈에 닭 울음소리와 다듬이소리를 듣고 술사(術士)에게 물으니, 닭 울음은 꼬끼오[高貴位]이고 다듬이소리는 어근당(御近當)이니 즉위할 조짐이라고 하였다. 재위 기간은 22년이고 향년은 40세였다.”라고 하였다. 왕순의 어머니인 효숙왕태후 황보씨는 천추태후와 자매 사이이며, 둘 다 경종의 왕비이다. 현종 때에 효숙왕태후로 추존되기 전에는 헌정왕후(獻貞王后)로 불렸다. 경종이 죽은 뒤에 사저(私邸)로 나가 살던 중에, 왕래하던 안종(安宗)과 정을 통하여 현종을 낳았다.

대량조[大梁造]  진(秦)나라의 관직명이다. 대량조(大良造)라고도 쓴다. 한서(漢書) 백관지(百官志)에는 대상조(大上造)라고 되어 있는데, 진나라 20급 중 제16급의 작위. 집정관(執政官) 겸 군대를 통솔하는 벼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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