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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렴[大斂], 대렴불겸[大廉不嗛], 대령[大令], 대령리[大令梨]


대렴[大斂]  대렴(大斂)은 소렴 다음날에 이미 펴 놓은 생포로 시체를 묶고 관(棺)에 넣은 다음 빈 곳을 메워 결관(結棺)까지 하는 상례의 차례이다.

대렴[大斂]  염습(斂襲)의 첫 번째 단계로 사자의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절차를 소렴(小斂)이라 하고,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묶어서 입관(入棺)하는 절차를 대렴(大斂)이라 한다.

대렴[大斂]  죽은 이에 대한 입관(入棺)을 이른 것이다. 대렴하기 전에 죽은 이를 위하여 염의(斂衣)를 가하는 소렴(小斂)을 하는데 소렴은 죽은 다음날에 염상(斂床)을 방안에 설치하여 염의와 복금(複衾)을 시신에 입히고서 시신을 대청으로 옮기어 염사(斂事)를 행한다.

대렴불겸[大廉不嗛]  크게 깨끗한 행위는 겸손하지 않음. 참으로 깨끗한 사람은 겸손한 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2편 제물론(齊物論)에 “큰 도(道)는 일컬어지지 아니하고, 큰 말은 말하지 아니하며, 크게 어진 행위는 어질지 아니하며, 크게 깨끗한 행위는 겸손한 체 아니 하며, 큰 용맹은 사납게 굴지 않는다. 도(道)가 밝게 드러나면 도답지 않게 되고, 말이 분명하면 미치지 못하고, 인(仁)이 일정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깨끗함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고, 용맹스러움이 사나워지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이 다섯 가지는 둥글고자 하면서도 도리어 모난 데로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大道不稱, 大辯不言, 大仁不仁, 大廉不嗛, 大勇不忮. 道昭而不道, 言辯而不及, 仁常而不成, 廉清而不信, 勇忮而不成. 五者园而幾向方矣.]”라고 하였다.

대령[大令]  진(晉) 나라 때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아들로서 역시 명필인 왕헌지(王獻之)를 이르는데, 왕헌지(王獻之)가 중서령(中書令)을 맡았다가 물러난 뒤 왕민(王珉)이 그 후임이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이 당시에 명망이 나란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이 왕희지를 대령(大令)이라 부르고 왕민을 소령(小令)이라 불렀다 한다. 혹은 현관(縣官)의 경칭(敬稱)으로도 쓰인다. <晉書 卷王35 王珉列傳>

대령강[大寧江]  평안북도 삭주군 남서면에서 시작하여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대령리[大令梨]  왕헌지(王獻之)의 송리삼백첩(送梨三百帖)을 이른다. 대령(大令)은 동진(東晉)의 서예가 왕헌지(王獻之)를 가리킨다. 왕헌지가 만년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는데 그에 이어서 중서령이 된 왕민(王眠)과 구별하기 위해 왕헌지를 대령(大令), 왕민을 소령(小令)이라 불렀다. 왕헌지는 왕희지(王羲之)의 7남으로 왕희지와 더불어 이왕(二王)이라 일컬어졌고 특히 행서와 초서로 명성을 떨쳤는데, 그의 해서 작품 가운데 조식(曺植)의 시 낙신부(洛神賦) 13행이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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