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大武] 대무(大武)는 주 무왕(周武王)의 악곡명이다. 무왕이 은(殷)나라 주왕(紂王)를 토멸하고 천하를 평정했음을 노래한 것이다.
대무[大巫] 법술이 아주 뛰어난 무당을 말하는데, 전하여 학문이나 기예가 뛰어난 사람을 비유한다. 두보(杜甫)의 시 증위좌승장제(贈韋左丞丈濟)에 “문장을 자랑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도리어 대무를 와서 뵙네.[不謂矜餘力, 還來謁大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대무[大巫] 법술이 아주 뛰어난 무당을 말하는데, 학문이나 기예에 크게 뛰어나서 자신이 경복(敬服)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삼국지보주(三國志補註) 권6 오서(吳書)에 “이른바 소무(小巫)가 대무(大巫)를 만난 것처럼 신기(神氣)가 다 빠져버립니다.[所謂小巫見大巫, 神氣盡矣.]”라고 하였다.
대무[大巫] 자신이 심복하여 존경할 만한 인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장굉(張紘)이 위(魏)나라에서 건안 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던 진림(陳琳)의 글을 보고 칭찬하자, 진림이 “나와 같은 작은 무당이 그대와 같은 큰 무당을 보면 신기가 완전히 빠져버리고 만다.[小巫見大巫 神氣盡矣]”고 겸양했다는 고사가 있다. <通俗編 藝術 小巫>
대무[臺務] 어사대 즉 사헌부의 직무를 말한다.
대무[大無] 큰 흉작을 이른다.
대무신왕[大武神王] 고구려(高句麗)의 제3대 왕. 재위 18~44. 유리왕(瑠璃王)의 셋째 아들. 동부여(東扶餘)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를 죽이고 고구려에 병합하였고, 국토를 살수(薩水) 이북까지 확대하였으며, 왕자 호동(好童)을 시켜 낙랑군(樂浪郡)을 정벌하는 등 많은 나라를 공략하여 무공을 세웠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고구려 대무신왕 5년(22) 7월에 부여왕 대소의 종제(從弟)가 만여 명을 데리고 고구려에 투항하자 대무신왕은 그를 왕에 봉하고 연나부(掾那部)에 살도록 하였다. 또 그의 등에 낙문(絡文)이 있다고 하여 낙씨(絡氏) 성을 내렸다. 고구려 제6대 임금 태조대왕(太祖大王) 16년(68) 8월에 갈사왕(曷思王)의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함으로써 동부여는 이때 완전히 망하였다. <三國史記 卷14 高句麗本紀 大武神王, 卷15 高句麗本紀 大祖大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