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나라가 제(齊)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자, 제나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때 진진(陳軫)이 초나라 왕에게 진언하였다.
“왕께서는 동쪽에서는 땅을 쪼개주어 제(齊)나라와 화해하고, 서쪽에서는 진(秦)나라와 강화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초나라 왕은 진진을 진나라로 파견하였다. 그러자 진나라 혜문왕(惠文王)이 말하였다.
“그대는 본디 진나라 사람으로 나하고는 옛 부터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다. 그러나 내가 불민하여 친히 정무를 보지 못하니, 그대는 나를 버리고 초나라 왕에게로 가고 말았다. 지금 제나라와 초나라는 싸우고 있으나 어떤 사람은 제나라를 돕는 것이 상책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상책이 아니라고 한다. 그대는 물론 성심성의껏 자신의 왕을 위하여 계책을 내야 하겠지만 그 남는 힘으로 나를 도와줄 수는 없겠는가.”
진진이 말하였다.
“전하께서도 틀림없이 초(楚)나라에 머물던 오(吳)나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을 줄 압니다. 초나라 왕은 그를 대단히 총애했는데 그 사람은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나라 왕은 사람을 보내어 ‘정말 병에 걸린 것인지 그냥 향수병으로 그러는 것인지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희들로서는 향수병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만일 정말 향수병이라면 그가 고국인 오나라 노래[吳吟]를 읊조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저 또한 이 자리에서 전하를 위하여 오나라 노래[吳吟]를 읊어 볼까합니다.
전하께서는 관여(管與)가 한 말에 대하여 들으신 적이 있으신지요.
호랑이 두 마리가 사람을 먼저 잡아먹으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관장자(管莊子)가 찔러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관여가 그것을 말리며 ‘호랑이란 사나운 야수로 사람 잡아먹기를 좋아하오. 지금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사람을 놓고 먼저 잡아먹으려고 싸우고 있으니, 작은 것은 죽고 큰 것은 상처를 입을 것은 정한 이치요. 호랑이가 상처 입는 것을 기다려 찌르면 한 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게 되는 것이니, 한 마리를 더 죽이는 노고를 들이지 않고도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나라와 초나라가 싸우고 있으나 결국에는 제나라가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패하면 비로소 전하께서는 군대를 출동시켜 제나라를 구원하십시오. 제나라를 구원한다는 이득만 가지게 되고, 초나라를 공격하는 위험과 손해는 입지 않게 됩니다.
계책을 듣고 반복역순(反覆逆順)을 아는 것은 오직 전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계책을 세우는 것은 일의 근본이고, 그것을 듣고 가려내는 것은 존망의 기틀입니다. 계책을 잘못 세우거나 잘못 헤아려 듣고도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단계별로 계책을 세워 물샐 틈이 없는 자는 교란시키기 어렵고, 계책을 들음에 근본과 지엽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 자는 미혹시키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楚絶齊, 齊擧兵伐楚. 陳軫謂楚王曰: “王不如以地東解於齊, 西講於秦.” 楚王使陳軫之秦. 秦王謂軫曰: “子秦人也, 寡人與子故也. 寡人不佞, 不能親國事也, 故子棄寡人事楚王. 今齊・楚相伐, 或謂救之便, 或謂救之不便, 子獨不可以忠爲子主計, 以其餘爲寡人乎?” 陳軫曰: “王獨不聞吳人之遊楚者乎? 楚王甚愛之, 病, 故使人問之曰: ‘誠病乎? 意亦思乎?’ 左右曰: ‘臣不知其思與不思, 誠思則將吳吟.’ 今軫將爲王吳吟. 王不聞夫管與之說乎? 有兩虎諍人而鬪者, 管莊子將刺之, 管與止之曰: ‘虎者戾蟲, 人者甘餌也. 今兩虎諍人而鬪, 小者必死, 大者必傷, 子待傷虎而刺之, 則是一擧而兼兩虎也. 無刺一虎之勞, 而有刺兩虎之名.’ 齊・楚今戰, 戰必敗. 敗, 王起兵救之, 有救齊之利, 而無伐楚之害. 計聽知覆逆(順逆)者, 唯王可也. 計者, 事之本也; 聽者, 存亡之機. 計失而聽過, 能有國者寡也. 故曰: ‘計有一二者難悖也, 聽無失本末者難惑.’” <戰國策전국책/秦策진책(2)>
- 여충[戾蟲] 호랑이를 달리 이르는 말. 사나운 동물이라는 뜻이다.
- 관여[管與] 사기(史記)에는 관수자(館豎子: 여관의 심부름꾼)로 되어 있다.
- 관장자[管莊子] 고유(高誘)의 주(註)에 “관(管)은 변(卞)으로도 쓴다.”라고 하였으며, 사기(史記)에는 변장자(卞莊子)로 되어 있다. 변장자(卞莊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변읍(卞邑)의 대부로 용기(勇氣)가 대단해서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때려잡았다 한다. 당시 제(齊)나라가 그를 두려워해서 감히 노(魯)나라를 치지 못하였다. 논어(論語)에도 그 이름이 보인다.
- 계청[計聽] 계략을 들음. 계책을 들음. 청종계모(聽從計謀).
- 복역[覆逆] 복계(覆啓)하여 반대함. 임금이 내린 명령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면 임금의 뜻을 거스르면서 다시 아뢰는 것을 말한다.
- 복역[覆逆] 반복역순(反覆逆順). 반복(反覆)은 말이나 행동을 이랬다저랬다 하여 자꾸 고침. 역순(逆順)은 거꾸로 된 차례(次例), 순종(順從)과 거역(拒逆), 순리(順理)와 역리(逆理). 되돌아오기도 하고 덮어지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고, 따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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