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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代步]~대보귀[大寶龜]~대보단[大報壇]~대보잠[大寶箴]


대보[代步]  걷는 것을 대신한다. 배·수레·말 등을 타는 것을 이른다.

대보[大報]  교천(郊天)의 의미와 보덕(報德)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본원을 잊지 않고 크게 보답하는 것이다.[郊之祭也, 大報本反始也.]”라고 하였다.

대보[大寶]  임금의 자리. 왕위(王位). 옥새(玉璽).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 한다.[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라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임금의 지위를 가리킨다. 참고로, 구당서(舊唐書) 13권 덕종본기(德宗本紀)에 “짐이 과덕(寡德)함에도 불구하고 삼가 대보(大寶)를 물려받았다.[朕以寡德 祗膺大寶]”라고 하였다.

대보[大保]  주대(周代) 삼공(三公)의 하나. 태부(太傅)에 버금가는 벼슬로, 천자(天子)를 보필하였다. <書經 周官> <漢書 百官公卿表 上>

대보귀[大寶龜]  고대에 제왕들이 깊이 간직해 두고 의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점을 치던 큰 거북의 등 껍데기를 말한다. 서경(書經) 대고(大誥)의 주에 이르기를 “영왕께서 우리에게 큰 거북의 등 껍데기를 남겨 주셨다.[寧王遺我大寶龜]”라고 하였다.

대보단[大報壇]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 준 명나라 신종(神宗)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서 숙종(肅宗) 30년(1704)에 창덕궁 금원(禁苑) 옆에 세운 제단(祭壇)으로, 뒤에 영조(英祖) 25년(1749)부터는 명나라 태조(太祖)와 마지막 임금인 의종(毅宗)까지 합사(合祀)하였다.

대보단[大報壇]  1704년(숙종30) 예조 판서 민진후(閔鎭厚)의 발의로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파견한 은혜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을 제사하는 제단을 12월에 창덕궁 금원(禁苑) 옆에 설치하고, 황단(皇壇)이라고 칭하였다. 이는 병자호란에 남한산성에서 당했던 굴욕을 씻고자 하는 차원에서 대명절의(大明節義)를 앞세우고 청나라에 불복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대보단[大報壇]  대보단은 임진왜란 때 지원 군대를 파견해 준 명나라 신종(神宗)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서 1704년(숙종30) 옛 내빙고 터에 쌓은 제단(祭壇)이다. 그 후 1749년(영조25) 중국에서 명사(明史)를 간행하여 조선에 반포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의종(毅宗)이 원숭환(袁崇煥)을 파견하여 구원하려 하던 중 조선이 이미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에 감격한 영조는 대보단에서 의종과 명 태조를 함께 제향하고자 조정 신하들과 논의를 거친 끝에 제향 의절(儀節)을 정하였고, 그해 4월 11일 그에 따라 제향을 올렸다.

대보잠[大寶箴]  당(唐)나라 장온고(張蘊古)가 지은 작품으로, 태종(太宗)이 즉위한 초기에 규감(規鑑)이 되기 위해 상서(上書)한 것인데, 대보(大寶), 즉 천자(天子)의 자리를 지키기가 어려움을 서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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