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大賓] 대빈은 국빈(國賓)과 같은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문을 나가서는 마치 대빈을 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出門如見大賓]”는 말이 있다.
대빈감[帶頻減] 대(帶)는 요대(腰帶,) 즉 허리띠를 뜻하는데, 몸이 야위어 허리띠를 여러 차례 줄여 맨 것을 가리킨다. 유우석(劉禹錫)의 시 수낙천영로견시(酬樂天咏老見示)에 “누구라도 늙기를 바라는 이 없을 테고, 늙는 것을 애석해하지 않는 이가 없을 건데. 몸이 수척해지면서 허리띠가 점점 줄고, 머리카락 줄어들어 관모가 자꾸 틀어지네.[人誰不顧老, 老去有誰憐. 身瘦帶頻減, 髮稀冠自偏.]”라고 한 데서 보인다.
대빈상지조례[待擯相之詔禮] 빈상(擯相)이 례(禮)를 말해주기를 기다림. 빈(擯)은 나가서 빈객을 영접하는 자이고, 상(相)은 의식을 집행하는 자를 이른다. 조례(詔禮)는 의식의 진행을 고하여 알려줌을 이른다.
대빈재[待賓齋] 정이(程頤)가 학제(學制)를 검토하고 올린 글에서, 태학 안에 존현당(尊賢堂)을 만들고 대빈재(待賓齋)와 이사재(吏師齋)를 설치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초빙하여 예우하는 방도로 제시한 것이다.
대빙[大聘] 제후가 3년마다 경(卿)으로 하여금 천자에게 문안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제후가 천자에게 매년 한 번씩 소빙(小聘)을 하고 3년마다 한 번씩 대빙(大聘)을 하고 5년마다 한 번씩 조회를 한다.[諸侯之於天子也, 比年一小聘, 三年一大聘, 五年一朝.]”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비년(比年)은 매년이다. 소빙은 대부(大夫)를 시키고 대빙은 경을 시키고 조회는 친히 간다.[比年, 每歲也. 小聘使大夫, 大聘使卿, 朝則君自行.]”라고 하였다.
대빙[戴憑]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대빙(戴憑)이 경학(經學)에 아주 밝았었다. 한번은 정조조하(正朝朝賀)차 백관(百官)이 모두 모였을 적에 임금이 군신(群臣)에게 명하여, 경(經)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경의(經義)를 묻게 하되, 만일 뜻이 잘 통하지 못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문득 그 사람의 자리[席]를 빼앗아서 뜻이 잘 통하게 설명한 사람에게 보태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자 대빙이 경의에 제일 능통하여 50여 석(席)을 거듭 빼앗아 깔고 앉았으므로, 도성에서 “경의 해설에 막힘없는 대 시중[解經不窮戴侍中]”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79上 戴憑列傳>
대빙재[待聘齋] 대빙재(待聘齋)는 고려 때 국학(國學)에 설치한 칠재(七齋), 즉 일곱 가지 강좌(講座) 가운데 하나이다. 칠재는 곧 주역(周易)을 전문으로 강의하는 이택재(麗澤齋), 상서(尙書)를 강의하는 대빙재(待聘齋), 시경(詩經)을 강의하는 경덕재(經德齋), 주례(周禮)를 강의하는 구인재(求仁齋), 예기(禮記)를 강의하는 복응재(服膺齋), 춘추(春秋)를 강의하는 양정재(養正齋), 병서(兵書)를 강의하는 강예재(講藝齋)를 아울러 이른 말이다. 참고로,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유자는 자신의 자리 위에 진귀한 보배라 할 학식을 쌓아 놓고서 초빙해 주기를 기다리는 법이다.[儒有席上之珍以待聘]”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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