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의 등딱지를 뚫고[鑿龜] 점대를 셈하여[數筴] 점을 친 결과 길조(吉兆)였다 하여 연(燕)나라를 공격한 것이 조(趙)나라였습니다. 거북의 등딱지를 뚫고 점대를 셈한 결과 길조였다고 하여 조(趙)나라를 공격한 것이 연(燕)나라였습니다. 극신(劇辛)이 연나라를 섬겼으나 공(功)을 세우지 못하여 사직(社稷)이 위험에 빠졌고, 추연(鄒衍)이 연나라를 섬겼으나 공(功)을 세우지 못하여 나라의 명운(命運)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조(趙)나라는 먼저 연(燕)나라에 승리하고 뒤에 제(齊)나라에 승리하자, 나라는 어지러웠으나 의기양양하여 스스로 진(秦)나라와 필적한다고 여겼으니, 이것은 조나라의 거북점은 영험이 있고 연나라의 거북점은 사람을 속여서가 아닙니다.
조(趙)나라는 또 거북의 등딱지를 뚫고 점대로 셈하는 점을 쳐서 북쪽으로 연(燕)나라를 공격하고, 연나라를 겁박해서 진나라를 맞서게 하려고 하였는데, 아주 길(吉)하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처음에 조(趙)나라가 대량(大梁)을 공격하자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상당(上黨)으로 출병(出兵)하였고, 조나라 군대가 이(釐)에 도착했을 때 조나라의 여섯 성(城)이 진나라 군대에 함락되었으며, 조나라 군대가 연나라의 양성(陽城)에 이르렀을 때는 진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업(鄴)을 함락시켰습니다. 방원(龐援)이 구원하기 위하여 연나라에서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왔을 때에는 조나라의 장(鄣)이 이미 완전히 함락된 뒤였습니다.
이에 신(臣)은 “조(趙)나라의 거북점이 멀리 연(燕)나라와의 전쟁에 대해서는 예견(豫見)하지 못했을지라도, 가까이 진(秦)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예견했어야 마땅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秦)나라는 ‘아주 길하다.[大吉]’는 점괘 때문에 영토를 확대하는 실리(實利)와 연(燕)나라를 조(趙)나라의 공격에서 구제하였다는 명분(名分)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趙)나라는 대길(大吉)이라는 점괘에도 국토가 깎이고 군대가 패전의 치욕을 당했으며, 임금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이 또한 진나라의 거북점은 영험이 있었고, 조나라의 거북점은 사람을 속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초에 위(魏)나라는 여러 해 동안 동쪽에 군대를 보내어 도(陶)와 위(衛)의 땅을 탈취했는데, 그 후 여러 해 동안은 서쪽의 진나라와 싸우다가 그 나라를 잃고 말았으니, 이는 승리를 상징하는 풍륭(豐隆), 오행(五行), 태일(太一), 왕상(王相), 섭제(攝提), 육신(六神), 오괄(五括), 천하(天河), 은창(殷搶), 세성(歲星)이 그 몇 해 동안 서쪽의 진나라에 때문이 아니고, 그 패배를 상징하는 천결(天缺), 고역(弧逆), 형성(刑星), 영혹(熒惑), 규태(奎台)가 그 몇 해 동안 동쪽의 위(衛)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북점과 시초점(蓍草占)과 귀신(鬼神)도 승리를 드러내기에 부족하고, 좌우의 별자리도 전쟁을 좌우하기에 부족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것에 의지한다면 이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습니다.
<한비자 제19편 식사>
鑿龜數筴, 兆曰 「大吉」, 而以攻燕者, 趙也. 鑿龜數筴, 兆曰 「大吉」, 而以攻趙者, 燕也. 劇辛之事燕, 無功而社稷危 ; 鄒衍之事燕, 無功而國道絶. 趙代先得意於燕, 後得意於齊, 國亂節高, 自以爲與秦提衡, 非趙龜神而燕龜欺也. 趙又嘗鑿龜數筴而北伐燕, 將劫燕以逆秦, 兆曰 「大吉」. 始攻大梁而秦出上黨矣, 兵至釐而六城拔矣 ; 至陽城, 秦拔鄴矣 ; 龐援揄兵而南, 則鄣盡矣. 臣故曰 : 趙龜雖無遠見於燕, 且宜近見於秦. 秦以其 「大吉」, 辟地有實, 救燕有有名. 趙以其 「大吉」, 地削兵辱, 主不得意而死. 又非秦龜神而趙龜欺也. 初時者, 魏數年東鄕攻盡陶·衛, 數年西鄕以失其國, 此非豐隆·五行·太一·王相·攝提·六神·五括·天河·殷搶·歲星, 非數年在西也, 又非天缺·弧逆·刑星·熒惑·奎台, 非數年在東也. 故曰 : 龜筴鬼神不足擧勝, 左右背鄕不足以專戰. 然而恃之, 愚莫大焉. <韓非子 第19篇 飾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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