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大序] 모시(毛詩)의 관저편(關雎篇) 머리에 있는 서문(序文)으로, 왕숙(王肅)과 심중(沈重)은 ”자하(子夏)의 저작이다.”라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공자(孔子)의 저작이다.”라고 하였다.
대서[大暑] 몹시 심한 더위. 혹서(酷暑). 24절후(節侯)의 하나. 태양(太陽)의 황경(黃經)이 120°에 달한 때로서 양력(陽曆) 7월 24일 경(頃)에 해당(該當)한다.
대서[大誓]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곧 태서(泰誓)의 다른 표기이다.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하면서 군사들에게 한 서사(誓詞)를 기록한 내용이다.
대서[代序] 세계(世系)를 이른다.
대서거혹리[大暑去酷吏] 대서(大暑)는 24절기 중 하나로 매년 7월 23,4일에 드는 매우 더운 날이다. 아주 더운 날을 이르기도 한다. 오대(五代) 때에 범질(范質)이 벼슬하기 전에 다점(茶店)에 들어갔는데, 마침 여름이므로 손에 부채를 들었다. 그 부채에 글쓰기를 “큰 더위에 혹리가 가고, 맑은 바람에 고인이 온다.[大暑去酷吏 淸風來故人]”라고 하였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한 사나이가 앞에 와서 말하기를 “혹리(酷吏)를 어찌 큰 더위에만 비할 것이겠소. 상공(相公)께서 다른 날에 이 폐단을 깊이 살피시오.[世之酷吏冤獄, 何止如大暑也! 公他日當深究此弊.]”라 하고는 가버렸다. 범질이 다점에서 나와 그 부근에 있는 신사(神詞)에 들렸더니, 신상(神像)이 곧 조금 전에 본 그 사람이었다. 그 뒤에 범질이 후주(後周)의 재상(宰相)이 되어 첫 머리에 형서(刑書)를 정리하여 형통(荊統)을 만들었다.
대서특기[大書特記]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쓴다’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輿論化)함을 이른다. 대자특서(大字特書). 특필대서(特筆大書). 대서특필(大書特筆).
대서특서[大書特書] 큰 글씨로 두드러지게 기록함. 중대한 일은 여러 차례 강조하여 기술한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원진(元稹)에게 답한 편지인 답원시어서(答元侍御書)에 “족하의 연세 아직 강성하시니 덕을 이어 계승하시면 장차 대서특필하여 여러 번 기록하지 한번만 기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足下年尚彊, 嗣德有繼, 將大書特書, 屢書不一書而已也.]”라고 하였다.
대서특필[大書特筆]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輿論化)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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