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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大臣使]~대신한득진견[大臣罕得進見]~대실[臺室]~대실물정[大失物情]


대신사[大臣使]  일본의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실정 시대(室町時代)에 장군 족리(足利)씨에 의해 임명되어, 각 지방의 지배권을 위임받은 수호대명(守護大名)의 사신을 말한다. 대체로 족리(足利)씨의 일문(一門)이나 유력한 가신(家臣)이 임명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성종실록> 7년 1월 병자조에 의하면 조선 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전산(畠山), 세천(細川), 좌무위(左武衛, 斯波), 경극(京極), 산명(山名), 대내(大內)씨 등을 관제대신(管提大臣)이라고 칭하고 있다.

대신지록불감간 소신외죄불감언[大臣持祿不敢諫 小臣畏罪不敢言]  대신(大臣)은 녹봉을 유지하기 위해 감히 간쟁하지 못하고, 소신(小臣)들은 죄가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구당서(舊唐書) 이강전(李絳傳)에, 이강(李絳)이 “대신(大臣)들은 녹봉을 유지하기 위해 감히 간쟁하지 못하고 소신(小臣)들은 죄가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관중(管仲)은 ‘패공(霸功)을 해침이 가장 심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 등이 배불리 먹고 말하지 않으니, 자신을 위한 계책으로는 좋겠지만 폐하는 어찌한단 말입니까?[大臣持祿不敢諫, 小臣畏罪不敢言, 管仲以爲害霸最甚. 今臣等, 飽食不言, 自爲計得矣, 如陛下何.]”라고 한 데서 보인다.

대신한득진견[大臣罕得進見]  황제가 조회를 자주 열지 않아 대신들이 나아가 접견하기가 어려움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47 당기(唐紀) 경종(敬宗)에 “정월에 상(上)이 놀러 다니는 것이 절제(節制)가 없고 여러 소인들과 친압하여 조회를 한 달에 두세 번밖에 보지 않으니, 대신들이 나아가 상(上)을 접견하기가 어려웠다.[正月 上遊幸無常昵比群小 視朝月不再三 大臣罕得進見]”라고 한 데서 보인다.

대실[臺室]  천지(天地)의 신(神)을 제사하기 위한 석실(石室)로, 한 무제(漢武帝)는 신선(神仙)을 추구하여 대실(臺室)·오단(五檀) 등을 축조하였다. <史記 封禪書>

대실[大室]  태묘(太廟)의 제실(祭室)을 이른다. 태묘(太廟) 안의 중앙에 위치한 주공(周公)의 묘(廟)이다. 태실(太室)의 제도는 태묘(太廟) 안에 신주(神主)를 안치(安置)하는 묘실(廟室)에 지붕을 2층으로 만들어 지붕 위에 또 하나의 지붕을 설치한다. <春秋左傳注>

대실물정[大失物情]  크게 민심을 잃음을 이른다.

대실소망[大失所望]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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