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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평[大有坪], 대윤[大尹], 대윤차[大輪次], 대융[大戎]


대유사[大酉舍]  규장각(奎章閣) 사무를 관장하는 부속건물의 하나이다. ❏

대유솔무잠공[帶有率無箴功]  잠공(箴功)은 정세하게 바느질한 것이니, 곧 띠에는 굵은 실로 꿰맨 곳만 있고, 가는 실로 정세하게 바느질한 흔적이 없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대부 이상은 대대의 너비가 4치이다. 잡대의 경우, 임금은 그 테두리를 두를 때 주(朱)를 위로 하고 녹(綠)을 아래로 하며, 대부는 테두리를 두를 때 현(玄)을 밖으로 하고 화(華)를 안으로 한다. 사(士)에게는 대대와 잡대의 구별이 없고 그 테두리 색깔에도 안팎의 차이가 없이 모두 치색(緇色)으로 하는데, 너비가 2치이니 두 번 두르면 4치가 된다. 이것이 대부 이상의 띠와 다른 점이다. 모든 띠는 바느질이 미세해서 그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大夫大帶四寸 雜帶君朱綠 大夫玄華 士緇辟 二寸 再繚四寸 凡帶有率無箴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대유평[大有坪]  화성(華城) 북쪽 만석거(萬石渠)와 축만제(祝萬堤) 사이에 조성했던 대규모의 둔전(屯田)이다. 지금의 수원시 정자2동의 수성고등학교와 상공회의소 일대에 있었다.

대윤[大尹]  부(府)와 현(縣)의 장관(長官)을 이른다.

대윤차[大輪次]  인재를 우연히 빠뜨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문과에 낙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보이던 재시험으로, 시(詩)·부(賦)로 제술 시험을 보여 성적 우수자에게 문과 회시(會試) 또는 전시(殿試) 응시 자격을 부여하였다. <仁祖實錄 26年 8月 8日> <純祖實錄 9年 10月 4日>

대융[大戎]  당숙(唐叔)의 후손(後孫)으로 희성(姬姓)인데, 융적(戎狄)으로 가서 거주(居住)한 자이다. 호백행(狐伯行)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호(狐)를 씨(氏)로 삼았다. 견융(犬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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