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戴逸] 대규(戴逵)의 일유(逸遊). 진(晉)의 대규(戴逵)가 자는 안도(安道)인데 학문도 해박하고 문장도 능한 데다 글씨와 그림도 일가를 이루었고 또 거문고를 잘 타서 당시 성명이 자자했다. 무릉왕 희(武陵王晞)가 그의 거문고 솜씨를 듣고 사람을 시켜 부르자, 그는 그 사자(使者)가 보는 앞에서 거문고를 부수고 끝까지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晉書 陰逸戴逵傳>
대일사[戴逸士] 대 일사(戴逸士)는 후한(後漢)의 은사였던 대양(戴良)을 가리킨다. 그에게는 현명한 딸 다섯이 있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딸들을 시집보낼 때에 연포로 만든 치마와 무명 이불[練裳布被]과 대나무 상자와 나막신[竹笥木履]을 마련하여 보냈다. <古今事文類聚 後集 卷13 練裳遣嫁>
대일통[大一統] 천하를 통일하여 하나로 만든 것을 말한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원년조에 “어찌하여 왕정월(王正月)이라고 말하는가? 대일통(大一統)이기 때문이다.[何言乎王正月 大一統也]””라고 하였는데, 서언(徐彦)의 소(疏)에 “왕자(王者)가 천명(天命)을 받아 정월(正月)을 제정하여 천하를 통솔함으로써 만물로 하여금 하나도 빠짐없이 떠받들어 1년의 시작으로 삼기 때문에 대일통이라고 말한 것이다.[王者受命, 制正月以統天下, 令萬物無不一一皆奉之以爲始, 故言大一統也.]”라고 하였다. 또, 하휴(何休)의 주에 “통(統)은 ‘시작’이라는 뜻이니, 총괄한다는 말이다. 천왕(天王)은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아 제도를 개혁하고 천하에 정교(政敎)를 펴서 공후(公侯)에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산천에서부터 초목·곤충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정월에 매어두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정교(政敎)의 시작’이라고 한 것이다.[統者 始也 總繫之辭 天王者 始受命改制 布政施敎於天下 自公侯至於庶人 自山川至於草木昆蟲 莫不一一繫於正月 故云政敎之始]”라는 내용이 보인다. <春秋公羊傳注疏 隱公 元年 何休注>
대일통지의[大一統之義]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지어서 육국(六國)이 멋대로 왕 노릇을 할 때 천하의 제후국 모두가 중국 황제에게 복속되어 그 문물과 제도를 따르도록 한 것을 말한다. 춘추(春秋) 은공(隱公) 원년 조 첫머리에 “원년 춘 왕정월(元年春王正月)”이라고 한 연대 표기 방식과 관련하여,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 “어째서 왕정월이라고 하였는가. 크게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서이다.[何言乎王正月 大一統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대임[大任] 태임(太任) 혹은 태사(太姒)라고도 한다. 주문왕의 정비이며 주무왕의 모친이다. 10명의 아들은 그 순서에 따라 백읍(伯邑) 고(考), 무왕(武王) 발(發), 관숙(管叔) 선(鮮), 주공(周公) 단(旦), 채숙(蔡叔) 도(度), 조숙(曹叔) 진탁(振鐸), 성숙(成叔) 무(武), 곽숙(霍叔) 처(處), 강숙(康叔) 봉(封), 염계(冉季) 재(載)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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