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대전[大錢], 대전[大篆], 대전[大傳]


대전[大錢]  부연일기(赴燕日記) 주견제사(主見諸事) 전재(錢財)에 “돈에는 경전(京錢)과 대전(大錢)의 구분이 있는데 경전은 잡전(雜錢)을 말한다. 가장 작은 것은 거위 눈알에 불과하여 얇고 작아서 글자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대전은 잡전이 없고 두께가 균일하게 같다.[錢有京錢大錢之分, 京錢雜錢之謂. 最小者不過鵝眼, 薄小以未有字形. 大錢者純無雜錢, 敦厚均同.]”라고 하였다.

대전[大錢]  고액권. 위소(韋昭)는 가규(賈逵)의 말을 인용하여 “대전(大錢)은 옛것보다 커서 그 가치가 소중하다.[大錢者, 大於舊, 其價重也.]”라 하고, 당고(唐固)의 말을 인용하여 “대전은 무게가 12수(銖)인데, 글자를 대천오십(大泉五十)이라고 썼다.[大錢重十二銖, 文曰: 大泉五十.]”라고 하였다.

대전[大錢]  당백전(當百錢)이다.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재정적 궁핍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원군이 만든 화폐이다. 법정 가치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실제 가치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여 화폐 가치의 폭락을 가져왔고, 1867년(고종4)에 폐지되었다.

대전[大篆]  BC 12세기경중국 고대문자인 갑골문(甲骨文)과 고문(古文)에서 파생되어 주대(周代)에 발달한 한자 서체이다. 서체 중에서 가장 초기의 형태로 나중에 예술적으로 근접한 형태인 전서(篆書)로 발전했다. 당시에 통행하던 서체로서의 자리를 빼앗긴 지 오랜 뒤에도 계속해서 도장을 새길 때 쓰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원래 붓에 먹이나 옻칠을 묻혀 목간(木簡)이나 죽간(竹簡), 또는 비단 위에 썼다. 이 서체는 고문과 비슷하며, 고른 두께로 이어지다가 뭉툭하게 끝나는 직선과 곡선의 엄격한 균형이 특징이다.

대전[大傳]  공자가 주역(周易)의 경문을 해설했다고 하는 이른바 십익(十翼)을 말한다.

대전[大專]  대균(大鈞)과 같은 말로 녹로(轆轤)인데, 대자연이나 조물주를 의미한다. 반(槃)은 파(播)로도 통용하며 전(轉)과 같다. 도공이 녹로를 돌려 도자기를 만드는 것처럼 조물주가 거대한 녹로를 돌려 만물을 만들어 낸다는 말로, 사기(史記)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서 “조화의 신이 만물을 만들어 냄이여, 넓고 커서 한계가 없구나.[大專槃物兮, 坱軋無垠.]”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대전[大傳]  한(漢)나라 복승(伏勝)이 진 시황의 분서갱유 때 벽 속에 숨겨두었던 상서(尙書)를 한(漢)나라 건립 후에 꺼내어 전(傳)을 단 상서대전(尙書大傳)의 약칭(略稱)으로, 청(淸)나라 피석서(皮錫瑞), 손지록(孫之騄) 등의 집본(輯本)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정현의 주본(注本)은 상서대전주(尙書大傳注)이다.

대전[大傳]  대전은 주역(周易)의 경문을 해석한 단전(彖傳), 상전(象傳), 문언전(文言傳), 계사전(繫辭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 등 일곱 가지 해석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계사전을 말한다.

대전[大傳]  일반적으로 대전(大傳)은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과 설괘전(說卦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경의고(經義考)의 “공자의 십익이 상경과 하경을 설명하기 때문에 전대(前代)에 계사전(繫辭傳)과 설괘전(說卦傳)을 주역대전(周易大傳)이라고 불렀다.[夫子十翼解説上下經 故前代號繫辭説卦爲周易大傳]”라고 한 데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經義考 卷23 周易叢說>

대전[大傳]  주역(周易)의 괘사와 효사를 설명한 단전(彖傳), 상전(象傳), 문언전(文言傳), 계사전(繫辭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단전, 상전, 계사전을 상하(上下)로 나누어 십익(十翼)이라고도 한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