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大田] 나라의 농사를 관장하는 벼슬이다.
대전[大田] 시경(詩經) 대전(大田)은 많은 수확을 모조리 거두지 않고 이삭들은 남겨 두어 생활이 어려운 과부가 주워 갈 수 있게 함으로써 어려운 사람들과 풍성함을 함께 누리는 것을 기술하였다.
대전[大田] 현재의 경북(慶北)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갈천리(葛川里)에 있다.
대전[大顚] 당나라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때 영산사(靈山寺) 주지(主持) 대전(大顚)을 만나러 갔다가 출타 중임을 알고 도포를 벗어놓고 돌아왔다는 고사가 있다.
대전[大典] 조선 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가리킨다.
대전[大全] 오경사서대전(五經四書大全)의 약칭이다. 명 성조(明成祖)는 영락(永樂) 12년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 호광(胡廣) 등에게 명하여 사서오경을 다시 정리하여 대전을 편찬하게 하였으므로 영락대전(永樂大全)이라 하기도 한다.
대전다가[大田多稼]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전(大田)에 “큰 밭에 심기를 많이 한지라.[大田多稼]”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부지런히 농사지어 많은 수확을 거두고 복록을 누린다는 뜻이다.
대전단[大旃檀] 단향목(檀香木)으로 향나무를 이르는데, 목불상(木佛像)은 대개 단향목(檀香木)으로 제작한다.
대전법[代田法] 조과(趙過)는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이다. 그가 수속도위(搜粟都尉)가 되었을 때에 처음으로 창설한 것이 바로 이 대전법(代田法)인데, 이것은 일종의 윤작법(輪作法)으로 같은 경작지 내의 일부를 해바꿈하여 재배함으로써 지력의 소모를 막고 일정한 수확을 계속 올리고자 하는 농법이다. 이 농법이 농지(農地)의 일부를 계속 묵혀 둔다는 측면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이윤(伊尹)이 창설한 구전법(區田法)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漢書 卷24 食貨志上>
대전별감[大殿別監] 대내(大內)에서 심부름을 하던 벼슬의 하나.
대전보씨[大全輔氏] 경원 보씨(慶源輔氏)로, 송나라 사람 보광(輔廣)이다. 자는 한경(漢卿), 호는 잠암(潛菴)이다. 당시 사람들이 부이(傅貽) 선생이라 일컬었다. 여조겸(呂祖謙)과 주자에게 사사(師事)하였다. 저서에 사서찬소(四書纂疏), 육경집해(六經集解)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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