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待制] 고려 시대에, 보문각(寶文閣)에 속한 정5품 벼슬이다. 보문각은 경연(經筵)과 장서(藏書)를 맡아보던 관아이다.
대제[待制] 당(唐)나라 때 생긴 관직으로, 송(宋)나라 때에도 그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각 전(殿)·각(閣)에 모두 설치하였다. 예컨대 보화전대제(保和殿待制),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와 같은 명칭이 있었다. 지위는 학사(學士)와 직학(直學)의 아래이다.
대제[待制] 벼슬 이름이다. 매일 교대로 대기(待機)하여 임금의 조칙(詔勅) 등을 초(草)하였다.
대제[大祭] 대사(大祀). 나라의 종묘(宗廟) 제사를 말한다. 사직, 종묘, 영녕전(永寧殿)에 지내는 제사를 이른다. <國朝喪禮補編 卷1 戒令>
대제[對劑] 대제(對劑)는 증상에 꼭 들어맞는 처방을 의미한다.
대제[大堤] 고적지명(古蹟地名). 일통지(一統志)에 “대제는 양양부 성 밖에 있는데 주변 삼십여 리에 상업이 번영했다.[大堤在襄陽府城外, 周圍有三十多里, 商業繁榮.]”라고 하였다.
대제[大堤] 대제(大堤)는 중국 양양(襄陽)의 지명인데, 남조(南朝) 송(宋)의 수왕(隋王) 유탄(劉誕)이 양양에서 밤에 기녀들의 노래를 듣고 지은 양양악(襄陽樂)과 남조(南朝) 양(梁)의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이 대제의 기녀를 읊은 대제곡(大堤曲)이 유명하다. 전하여 대제는 기녀나 창녀가 사는 곳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남조 양(南朝梁) 소강(蕭綱)의 대제(大堤) 시에 “길쌈 잘하는 아내를 몰아내고, 돈 잘 세는 요망한 계집 들여왔네.[出妻工織素 妖姬悽數錢]”라는 표현이 있다. 요컨대 기녀가 애교를 떨며 웃는 것은 사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돈을 탐해서이듯, 이부 상서가 부드러운 얼굴로 웃으며 밤에 사람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가 바칠 돈을 좋아해서라는 의미이다.
대제[大堤] 대제는 본디 호북성(湖北城) 양양현(襄陽縣)에 있던 제명(堤名)인데, 악부곡(樂府曲) 가운데 양양악(襄陽樂)의 대제곡(大堤曲)이 바로 여기서 유래하였다. 장간지(張柬之)의 대제곡(大堤曲) 시에 “남국에 가인이 많다지만, 대제의 여인들만은 못하다네[南國多佳人 莫若大堤女]”라고 하였다.
대제[大堤] 악부곡 양양악(襄陽樂)에서 “아침에 양양성을 떠난 낭군이, 저녁이면 대제에서 묵게 될 텐데. 대제에 살고 있는 여인들 모두, 꽃처럼 고와 낭군이 놀라시겠네.[朝發襄陽城, 暮至大堤宿. 大堤諸女兒, 花艶驚郞目.]”라고 하였다. 또 시경(詩經) 정풍(鄭風) 풍(豊)에 “풍채 좋은 그대가 나를 골목에서 기다리고, 건장한 그대가 집안에서 나를 기다리네.[子之豊兮, 俟我乎巷兮; 子之昌兮, 俟我乎堂兮.]라고 하였다. 대제(大堤)는 소식이 서호에 쌓은 소공제(蘇公堤 또는 蘇堤)라 불리는 십 리 길이의 둑을 가리킨다. 창(昌)은 건장하고 아름다운 것을, 풍(豊)은 보기 좋은 것을 가리킨다.
대제[大堤] 양양(襄陽)을 가리킨다. 원래는 중국의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큰 제방(堤防)을 지칭하는 말인데, 악부(樂府)인 양양악(襄陽樂) 속에 대제곡(大堤曲)이 들어 있어서, 양양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악부시집(樂府詩集) 양양악(襄陽樂) 1에 “아침에 양양성을 출발하여 저녁에 대제에 이르러 자도다.[朝發襄陽城 暮至大堤宿]”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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