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곡[大堤曲] 대제(大堤)는 백동제(白銅堤)로, 중국 양양(襄陽)의 경내를 흐르는 한수(漢水)에 있는 방죽의 이름이다. 남조 송(南朝宋)의 수왕(隋王) 유탄(劉誕)이 양양에서 밤에 기녀들의 노래를 듣고 지은 악부 양양악(襄陽樂)과 남조 양(南朝梁)의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이 대제의 기녀를 읊은 대제곡(大堤曲)이 유명하다.
대제곡[大堤曲] 대제(大堤)는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큰 방죽으로, 이곳에 꽃이 피면 여자들이 한껏 단장하고 나와 놀며 사내들의 눈을 홀리며 어울렸다고 한다. 이를 노래한 것이 악부(樂府)에 실린 대제곡(大堤曲)인데, 본래 그 기원은 양양악(襄陽樂)에서 출발하였다. 양양악은 남북조 시대 송(宋)나라 수왕(隨王) 탄(誕)이 양양 군수(襄陽郡守)가 되었다가 이어 옹주 자사(雍州刺史)가 되었는데, 밤에 여자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역대로 많은 시인들이 대제곡을 지었다. 양양악(襄陽樂)의 첫머리에 “아침에 양양성을 떠나, 저녁에 대제에 이르러 자네. 대제의 많은 여자들, 꽃단장하고 사내들 눈 홀리네. 사내들은 물을 오르며 상앗대 젓고, 물을 내려가며 쌍노를 흔드네.[朝發襄陽城 暮至大堤宿 大堤諸兒女 花艶驚郎目 上水郎檐篙 下水搖雙櫓]”라는 구절이 있어, 여자들과 남자들이 즐겁게 어울리는 풍경을 그렸다. <樂府詩集 淸商曲辭5 襄陽樂>
대제곡[大堤曲] 악부(樂府) 청상곡사(淸商曲辭)의 하나로, 옹주곡(雍州曲)과 더불어 모두 양양악(襄陽樂)에서 나왔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간문제(簡文帝)가 지은 옹주십곡(雍州十曲) 중의 하나가 대제곡(大堤曲)이며, 당나라 이하(李賀)와 장간지(張柬之)의 작품이 있다. 대제는 백동제(白銅堤)로, 양양(襄陽) 성 밖을 흐르는 한수(漢水)의 방죽 이름이다. 화류계 여인이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연정을 그리고 있다.
대제녀[大堤女] 당나라 장조(張潮)의 시 양양행(襄陽行)에 “대제의 여러 기녀들은 돈 있는 남자를 사랑하지 결코 덕 있는 군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네.[大堤諸女兒 憐錢不憐德]”라고 하였다. 대제(大堤)는 술의 고장으로 유명한 중국 양양(襄陽)의 지명이다. 대제녀(大堤女)는 대제에 세운 청루에 있는 여인, 곧 기녀를 뜻한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수왕(隋王) 유탄(劉誕)이 양양에서 밤에 기녀들의 노래를 듣고 지은 양양악(襄陽樂)과 남조 양(梁)나라의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이 대제의 기녀를 읊은 대제곡(大堤曲)이 유명하다. <樂府詩集 卷48 襄陽樂 註> <玉台新詠 卷7 雍州十曲 大堤> 또 남조 양나라 소강(蕭綱)의 시 대제(大堤)에 “길쌈 잘하는 아내를 몰아내고, 돈 밝히는 요망한 계집 사랑하네.[出妻工織素 妖姬悽數錢]”라고도 하였다.
대제자[大弟子] 석가모니의 훌륭한 제자를 말한다. 석가모니는 10대제자(十大弟子)를 두었다.
대제학[大提學] 고려 시대, 보문각, 우문관, 진현관에 둔 정이품 또는 종이품 벼슬, 조선 시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의 정2품 벼슬이다.
대제화염성[大堤花艶成] 악부 청상곡사(淸商曲辭) 가운데 대제곡(大堤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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