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탄[大灘] 경기도 양근군(楊根郡) 남쪽 10리쯤에 있는 여울 이름이다. 여강(驪江)의 하류로서 용진(龍津)과 합류하는데, 큰 돌이 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있어 물이 벌창할 때는 보이지 않고, 물이 얕아지면 거센 파도가 일어서, 특히 수운(輸運)하는 배들이 경유하는 데 몹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1 京畿 楊根郡>
대탑공식[對榻共食] 평상을 마주하고 밥을 먹음. 방경백(房景伯)이은 중국 후위(後魏) 시대 청하(淸河) 사람으로 자는 장휘(長暉)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51에 그가 청하군(淸河郡) 태수(太守)로 있을 당시의 이야기가 “경백의 모친 최씨는 경서에 통달하고 식견이 밝았다. 하루는 패구에 사는 부인이 그 아들을 불효죄로 고소하였다. 경백이 이와 같은 사실을 모친에게 고하니, 모친이 말하기를 ‘말만 듣는 것은 직접 보느니만 못하다 하였다. 산속에 사는 백성이 아직 예의를 몰라 그러니, 어찌 심히 질책할 만한 일이겠느냐.’라고 하였다. 이에 고소한 모친을 불러와 평상을 마주하고 밥을 먹으면서 아들로 하여금 당 아래에 서서 경백과 그 모친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그러자 채 열흘이 안 되어 잘못을 후회하며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최씨가 ‘겉으로는 부끄러워하는 듯 보이지만 마음은 아직 아니다.’라고 하기에 그냥 두었다. 20여 일이 지나자 그 아들은 머리를 찧어 피를 흘렸고, 모친은 울면서 아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경백은 그제야 아들을 놓아주었다. 그 아들은 후에 효자로 이름났다.[景伯母崔氏 通經 有明識 貝丘婦人列其子不孝 景伯以白其母 母曰 吾聞聞名不如見面 山民未知禮義 何足深責 乃召其母 與之對榻共食 使其子侍立堂下 觀景伯供食 未旬日 悔過求還還 崔氏曰 此雖面慚 其心未也 且置之 凡二十餘日 其子叩頭流血 母涕泣乞還 然後聽之 卒以孝聞]”라고 소개되어 있다.
대태[臺駘] 대태(臺駘)는 금천씨(金天氏)의 후예인 매(昧)의 아들로, 세업을 이어 분수(汾水)와 조수(洮水)를 소통시켜 큰 공이 있자, 전욱(顓頊)이 분천(汾川)에 봉하였는데, 그 뒤에 분수의 신이 되었으니, 곧 산천의 신에 해당한다. 정(鄭)나라 자산(子産)이 진(晉)나라 평공(平公)을 문병하였는데, 숙향(叔向)이 자산에게 “복인(卜人)은 ‘실침(實沈)과 대태가 빌미[祟]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신입니까?”라고 묻자, 자산이 실침은 삼성(參星)의 신으로 성신(星辰)의 신에 해당하고 대태는 분수의 신으로 산천(山川)의 신에 해당하는데, 진 평공의 병이 이 두 신에 의한 병이 아니므로 이 두 신에게 영제를 지낼 필요가 없고, 음식·애락(哀樂)·여색(女色)이 원인이므로 그 점을 치료해야 한다고 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昭公元年>
대택[大澤] 넓은 소택(沼澤)지방, 강호(江湖)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대택[大澤] 대택현을 말하며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남쪽에 위치했던 지방이다.
대택[大澤] 옛날 못 이름이다. 안문산(雁門山) 북쪽에 있으며, 사방 천 리라 한다.
대택[大澤] 백두산 천지(天池)를 가리킨다. 이칭으로 지(池), 대지(大池), 용왕담(龍王潭), 달문담(達門潭) 등이 있다. 천지라는 명칭은 주로 18세기 중반 이후에 기술된 백두산 기행문 가운데 등장하며, 고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대택사단[大澤蛇斷]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정장(亭長)으로 있을 당시 술에 취해 밤중에 큰 못가를 지나가다가 큰 뱀이 앞길을 가로질러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는 칼을 빼들어 두 동강을 내버렸다. 멀리 뒤에서 따라가던 사람들이 뱀이 잘린 곳에 왔을 때 그곳에서 울고 있는 한 노파를 보고 왜 우느냐고 물었다. 노파가 대답하기를 “내 아들은 백제(白帝)의 자식인데 뱀으로 변해 길 위에 누워 있다가 방금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죽고 말았다. 그래서 울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이 노파가 자기들을 속인다 생각하고 그를 잡아다가 따져 물으려 하니 갑자기 사라졌다 한다. <史記 卷8 高祖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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