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위용[大瓠違用] 박은 보통 쪼개어 바가지로 사용하는데, 아주 큰 박을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면 ‘평평하여 깊이가 너무 얕아[瓠落]’ 물그릇으로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장자(莊子)의 친구 혜자(惠子)가 일찍이 장자에게 “위왕이 나에게 큰 박씨 하나를 보내 주므로, 이것을 심었더니 닷 섬들이 박이 열렸는데, 그 속에다 음료수를 채워 놓으니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고, 다시 두 쪽으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으나 너무 넓어서 쓸 수가 없었네. 속이 텅 비어 크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 소용이 없어 부수어 버렸네.[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 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擧也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用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라고 하자, 장자가 “지금 자네에겐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었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큰 통으로 만들어 강호에 띄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것이 너무 커서 쓸 데가 없다고 걱정만 하는가?[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逍遙遊>
대호정[帶湖亭] 강원도 고성 남강(南江) 가 고산대(高山臺) 위에 있던 정자이다. 남강은 금강산에서 발원(發源)하여 유점사(楡岾寺)를 거쳐 고성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조에 “대호정은 고산대에 있다. 추녀 아래로 푸른 강이 흐르는데 강 밖은 적벽(赤壁)이다.”라고 하였다.
대호지[大好紙] 한지(韓紙)의 한 가지로, 그 모양은 넓고 길며, 또 품질도 비교적 좋아서 과거(科擧) 시험 때 답지(答紙)인 시권(試券)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종이는 공물(貢物)의 하나로 정해졌다.
대호쾌활[大好夬活] 풍년을 표현한 것이다. 주희(朱熹) 시 석름봉차경부운(石廩峰次敬夫韻)에 “일흔두 봉우리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데, 한 봉우리는 석름이라는 옛 이름이 전하네. 집집마다 이렇게 높은 창고 있으니, 인간 세상 풍년이 든 것 너무 좋아라.[七十二峰都挿天 一峰石廩舊名傳 家家有廪髙如許 大好人間快活年]”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5 石廩峰次敬夫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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