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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흔고징[大昕鼓徵]~대흔지조[大昕之朝]~대흥토목[大興土木]


대흔고징[大昕鼓徵]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천자가 학(學)을 시찰할 적에는, 날이 막 밝을 무렵에 북을 쳐서 학사(學士)들을 부르니, 이는 사람들을 경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학사들이 이른 뒤에 천자가 이르러서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석전의 일을 행하게 하되 떳떳한 예절(禮節)을 일으키며 선사(先師)와 선성(先聖)에게 제사 지내게 하니, 유사가 석전(釋奠)의 일을 끝마치고 복명한다.[天子視學, 大昕鼓徵, 所以警衆也. 衆至, 然後天子至, 乃命有司行事, 興秩節, 祭先師·先聖焉. 有司卒事反命.]”라고 하였다.

대흔지조[大昕之朝]  대흔지조(大昕之朝)는 계춘(季春) 초하루를 말한다. 이때 3궁(宮)의 부인(夫人)과 세부(世婦) 중에 길한 사람을 점쳐서 골라 잠실로 들여보내 누에를 치게 하였는데, 잠실로 들어간 사람은 누에 종자를 받들고 시내로 가서 씻은 다음 공상(公桑)에서 뽕을 따 바람에 말려 누에에게 먹였다고 한다. <禮記 祭義>

대흥[大興]  충청남도 예산군에 속한 지명. 백제의 임존성(任存城) 또는 금주(今州)로 고려 초기에 대흥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동쪽으로 공주(公州), 남쪽으로 청양(靑陽), 서쪽으로 홍주(洪州), 북쪽으로 예산(禮山)에 인접해 있으며 도성과의 거리는 323리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0 忠淸道 大興縣>

대흥사[大興寺]  개성시 박연리 천마산 기슭에 있는 절이다. 1359년에 창건하고 1690년에 중건했다. 지금의 건물은 191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흥산성[大興山城]  개성부(開城府)의 천마산(天磨山)과 성거산(聖居山) 중간에 있는 석축(石築) 산성으로 1676년(숙종2)에 축조되었다.

대흥토목 종민경도[大興土木 縱民競渡]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백성들을 풀어 경도(競渡)하게 함. 범중엄(范仲淹)은 오중(吳中)의 큰 기근을 당했을 때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백성들을 풀어 경도(競渡)하게 하고 날마다 서호(西湖) 가에서 잔치를 벌였다. 범중엄(范仲淹)이 흉년에 토목공사를 일으킨 것은 목재 가격이 싸고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또 서호(西湖) 가에서 잔치를 벌인 것은 넉넉한 자들의 소비를 유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의도였다. 경도(競渡)는 배를 타고 서로 빨리 건너가기를 다투는 놀이인데,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은 후 경도를 하면서 그 영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鶴林玉露 卷107 救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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