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희[戴煕] 전당(錢塘) 사람으로 자는 순사(醇士), 호는 윤암(棆庵)·녹상(鹿床), 자칭 정동거사(井東居士)라고 하였다. 청나라의 화가이며 병부 우시랑(兵部右侍郎)을 지내고, 나중에 숭문서원(崇文書院)의 주강(主講)을 지냈다. 산수를 잘 그렸다.
대희[大姬] 주 무왕(周武王)의 큰 딸이며, 진(陳)나라의 시조인 우호공(虞胡公)의 비(妃)이니, 진(陳)나라의 조비(祖妣)이다. 무당과 가무를 좋아하여 진(陳)의 풍속이 가무를 숭상하게 되었다.
대희과망[大喜過望] 자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대우나 보상을 받아 크게 기뻐함을 이른다.
대희도질[代犧禱疾]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병이 들어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하였는데, 염조은(閻朝隠)은 소실산(少室山)에 가서 스스로 희생이 되어 제기(祭器) 위에 누워 측천무후의 목숨을 빌었다. 이에 측천무후의 병이 약간 차도가 생겨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는데, 나중에 장원일(張元一)이 이 광경을 그린 대희도(代犧圖)를 바치자 측천무후가 크게 웃으며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別集 卷19 性行部 代犧禱疾>
대희복조[代犧伏俎]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병이 들어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하였는데, 염조은(閻朝隠)은 소실산(少室山)에 가서 스스로 희생이 되어 제기(祭器) 위에 누워 측천무후의 목숨을 빌었다. 이에 측천무후의 병이 약간 차도가 생겨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는데, 나중에 장원일(張元一)이 이 광경을 그린 대희도(代犧圖)를 바치자 측천무후가 크게 웃으며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別集 卷19 性行部 代犧禱疾>
대희불귀조[代姬不歸趙] 대(代)의 왕비가 조나라로 돌아가지 않음. 대(代)는 전국 시대 나라 이름이다. 대(代)의 왕비는 조 부인(趙夫人)이라고 하는 여인으로, 조(趙)나라 간자(簡子)의 딸이고, 양자(襄子)의 누이이며, 대왕(代王)의 부인이다. 조 부인이 조나라 간자의 명으로 대왕에게 시집가 부인이 되었다. 그 뒤에 간자가 죽고 그의 아들 양자가 즉위하여서 대왕을 하옥산(夏屋山)으로 유인하여 술수를 써서 죽인 다음, 대나라를 침입해 멸망시켰다. 그런 다음 조 부인에게 조나라로 돌아오라고 하자, 조 부인이 말하기를 “내가 선군의 명을 받아 대나라의 왕을 섬긴 지 지금 15년이나 되었다. 대왕에게 큰 잘못이 없었는데, 죽음을 당하고 나라가 망하였다. 그러니 내가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내가 듣건대, 부인에게는 남편이 둘인 의리가 없다고 한다. 내가 어찌 두 남편을 섬기겠는가.”라 하고는, 가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하소연하면서 마계산(摩笄山)에서 자살하였다. <列女傳 節義傳 代趙夫人>
댁심지훈[宅心知訓] 서경(書經) 강고(康誥)에 무왕(武王)이 강숙(康叔)을 위후(衛侯)로 봉하면서 통치의 원칙을 충고하며 “가서 은나라 선철왕을 널리 구하여 백성들을 보호하여 다스리며, 너는 크게 상나라의 노성인들을 멀리 생각하여 마음을 편안히 하고 가르침을 알며, 따로 구하여 옛 선철왕의 일을 듣고 행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보호하라.[往敷求于殷先哲王 用保乂民 汝丕遠惟商耉成人 宅心知訓 別求聞由古先哲王 用康保民]”라고 하였다. 채전(蔡傳)은 댁심(宅心)을 “마음을 편안히 간직하는 것으로 곧 너의 머무를 곳을 편안히 하라는 뜻이다.[處心 安汝止之意]”라고 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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