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 도덕적, 윤리적 이상 실현을 위한 사려 깊고 인간적인 성품.
덕건명립 형단표정[德建名立 形端表正] 공덕(功德)이 서면 명예(名譽)가 확립되고, 몸이 바르면 그림자가 바름. 德(덕)은 즉 오상(五常)의 덕이다. 建(건)은 즉 선다[立]는 뜻이다. 名(명)은 현인·성인의 이름이다. 形(형)은 몸이다. 端(단)은 즉 바르다는 뜻이다. 나무를 세워 푯말을 삼을 때, 몸이 바르면 그림자 역시 바르고 푯말이 바르면 그림자 역시 바르다.
덕건명립[德建名立] 항상(恒常) 덕(德)을 가지고 세상사(世上事)를 행(行)하면 자연(自然)스럽게 이름도 서게 됨.
덕겸삼황 공과오제[德兼三皇 功過五帝] 덕(德)은 삼황(三皇)을 겸하고 공(功)은 오제(五帝)보다 더함. 오제삼황(五帝三皇)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를 삼황(三皇)이라 하고,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제요(帝堯)·제순(帝舜)을 오제(五帝)라 하는 바, 공덕(功德)이 역대 제왕 중에 최고인 군주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덕공[德公] 덕공(德公)은 방덕공(龐德公)으로, 후한 때 양양(襄陽)의 교외에서 농사를 짓는 은사(隱士)였다. 방덕공은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절한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처자를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덕공류안[德公遺安] 덕공(德公)은 방덕공(龐德公)으로, 후한 때 양양(襄陽)의 교외에서 농사를 짓는 은사(隱士)였다. 유안(遺安)은 자손에게 덕스러운 기풍을 물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담박하게 지키면서 무사 안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덕공(龐德公)이 현산(峴山) 남쪽에서 밭을 갈고 살면서 성시(城市)를 가까이하지 않자,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찾아와서 “선생은 시골에서 고생하며 지내면서도 벼슬해서 녹봉을 받으려 하지 않으니, 무엇을 자손에게 물려주려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방덕공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위태로움을 남겨 주는데 나는 유독 안녕함을 물려주니, 비록 물려주는 것이 똑같지는 않으나, 물려주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世人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 雖所遺不同 未爲無所遺也]”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덕공방상총[德公方上冢] 후한 말엽의 은사(隱士)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존경하여 배알을 하기도 했던 고사(高士)로서,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곡한 요청도 뿌리친 채, 가족과 함께 양양(襄陽)의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역시 당시의 고사였던 사마휘(司馬徽)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그가 성묘하러 산에 올라가고 집에 없자 사마휘가 대신 주인 행세를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高士傳 下>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한식날에 덕공이 바야흐로 성묘한 뒤에, 돌아와 보니 과연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寒食德公方上冢 歸來誰主復誰賓]”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6 寒食日答李公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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