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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봉[德山棒]~덕상예하[德上藝下]~덕상지잠[德象之箴]~덕색서우[德色鋤耰]


덕산[德山]  당(唐)의 고승(高僧)으로 성은 주씨(周氏), 검남인(劍南人)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깊이 경률(經律)을 밝혀 금강경(金剛經)을 통달하니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다. 선종(宣宗) 태중(太中) 초에 무릉자사(武陵刺史) 설연망(薛延望)이 굳이 청하여 덕산에 살았는데 그 도가 준험(峻嶮)하여 천하의 납자(衲子)를 봉살(棒殺) 하였다.

덕산감[德山鑑]  인명으로 당(唐) 낭주(郎州) 덕산원(德山院) 석(釋) 선감(宣鑑)인데 성은 주씨(周氏), 검남인(劍南人)이며 어려서 출가하여 경률(經律)에 깊고 밝되 가장 금강경(金剛經)에 통달하니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다.

덕산봉[德山棒]  덕산(德山)의 몽둥이. 덕산은 당(唐)나라 덕산(德山) 선감선사(宣鑑禪師)를 말한다. 그는 학승(學僧)들을 지도할 때 분별심(分別心)을 내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다그쳐서 견성(見性)하게 할 목적으로 말 대신 몽둥이로 후려쳐서 사람을 번뜩 깨닫게 하는 방법을 흔히 사용했는데, 이것을 덕산방(德山棒)이라고 한다. 고함을 쳐서 깨우치게 하는 임제 선사(臨濟禪師)의 임제할(臨濟喝)과 함께 병칭된다.

덕산사[德山寺]  현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에 있는 절이다. 신라 말기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여 덕산사(德山寺)라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59년에 중건되어 내원사(內院寺)라고 하여 오늘에 이른다.

덕산지치야정미[德産之致也精微]  덕이 만물을 발생시킨 것이 치밀하고 정미함. 예기(禮記)에 “예(禮)에 적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마음을 내면에 쓰기 때문이다. 천지의 덕이 만물을 발생시킨 것이 치밀하고 정미하니, 천하의 물건을 살펴보더라도 그 덕에 걸맞을 만한 것이 없다. 이와 같다면 적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禮之以少爲貴者, 以其內心也. 德産之致也精微, 觀天下之物無可以稱其德者, 如此則得不以少爲貴乎? 是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덕상예하[德上藝下]  덕행을 이룬 사람은 윗자리에 앉고 기예를 익힌 사람은 아랫자리에 앉음.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덕을 이룬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게 되고, 기예를 터득한 사람은 낮은 자리에 있게 되며, 덕을 행하는 사람은 앞에 있게 되고, 일을 행하는 사람은 뒤에 있게 된다.[德成而上 藝成而下 行成而先 事成而後]”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덕상지잠[德象之箴]  덕상(德象)의 잠(箴)과 여사의 편[女師之篇]은 모두 옛날 여자의 도리를 교훈한 글들이다.

덕색[德色]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을 자랑하는 말이나 얼굴빛. 은혜를 베푼 것을 자랑하는 기색을 이른다.

덕색서우[德色鋤耰]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한나라 가의(賈誼)의 시변(時變)에 이르기를 “아버지에게 농기구를 빌려 주면서도 은덕을 베푸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德色鋤耰], 어머니가 청소 도구를 빌려가도 그 자리에서 나무란다.[誶語箕帚]”라고 하였다. <新書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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