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지사[德昭之死] 덕소(德昭)의 죽음. 덕소(德昭)는 태조의 차자(次子). 태종 때 유주(幽州)를 정벌하는 데 따라갔는데 제(帝)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군중(軍中)이 놀라자, 덕소를 세우려고 모의하는 자가 있었다. 태종이 이 말을 듣고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 정벌에서 돌아와 북벌이 불리하다 하여 오래도록 포상을 하지 않으므로 덕소가 그것을 말하니 태종이 크게 노하여 “네가 스스로 임금노릇하기를 기다렸으니, 아직도 늦지 않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덕소는 물러나와 자결하였다. <宋史 卷244 燕王德昭傳>
덕쇠[德衰] 춘추 시대 초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가 난세에 도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孔子)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의 곁을 지나면서 노래하기를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느뇨? 지나간 일은 탓할 수 없거니와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위태로우니라.[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殆而]”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덕수[德水] 황하(黃河)의 다른 이름이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시황이 오행이 순환하는 것을 미루어 보고 말하기를 ‘주(周)나라는 화덕(火德)을 얻었고 진(秦)나라는 주덕(周德)을 대신하였으니, 지금은 수덕(水德)의 시작이다. 다시 황하의 이름을 덕수(德水)로 지어 수덕의 시작으로 삼도록 하라.’고 하였다.[始皇推終始五德之傳, 以爲周得火德, 秦代周德, 從所不勝. 方今水德之始 …… 更名河曰德水, 以爲水德之始.]”라고 하였다.
덕수미[德秀眉] 당(唐) 나라 원덕수(元德秀)의 자는 자지(紫芝)였는데 미목(眉目)이 뛰어나게 수려하였다. 그리하여 방관(房琯)이 “자지의 미목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에 대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한다.[見紫芝眉宇, 使人名利之心都盡.]”라고 하였다 <新唐書 元德秀傳>
덕숭업광[德崇業廣] 소학(小學) 제사(題辭)에 “이치를 궁구하며 몸을 닦는 것은 바로 대학(大學)의 도이다. 밝은 천명이 성대히 빛나서 안과 밖이 없으니, 덕이 높고 업이 넓어야만 그 처음을 회복한다.[窮理修身, 斯學之大. 明命赫然, 罔有內外, 德崇業廣, 乃復其初]”라는 말이 있다.
덕숭업광[德崇業廣] 소학집해(小學集解) 소학제사(小學題辭)에 “궁리(窮理)와 수신(修身)은 학문의 큰 것이다. 명명(明命)이 환하여 내(內)·외(外)가 있지 않으니 덕(德)이 높고 업(業)이 넓어야 이에 그 성(性)의 처음을 회복한다. 옛날에 부족한 것이 아니었는데, 오늘에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窮理修身 斯學之大 明命赫然 罔有內外 德崇業廣 乃復其初 昔非不足 今豈有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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