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1장에 “도라고 명명할 수 있는 도라면 그것은 항상 불변하는 도가 아니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이라면 그것은 항상 불변하는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는 말이 나온다.
도가지명당가주[陶家之茗党家酒] 송(宋) 나라 학사(學士) 도곡(陶穀)이 태위(太尉)인 당진(黨進)의 집에서 가기(歌妓)를 데려왔는데, 눈을 녹인 물로 차를 끓이면서 “당 태위의 집에서도 이런 풍류를 맛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 가기가 “조금씩 따라 마시며 나직하게 읊조리면서 양고(羊羔)의 미주(美酒)를 맛보곤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綠窓新話 卷下 引 湘江近事>
도가봉래산[道家蓬萊山] 모두 한(漢) 나라 때 궁중(宮中)의 장서처(藏書處)인 동관(東觀)의 별칭으로 쓰인 말이다. 후한(後漢) 때의 학자들이 동관을 가리켜 노씨장실(老氏藏室)이니 도가봉래산이니 하고 일컬었는데, 즉 노씨장실이란 노자(老子)가 일찍이 주(周) 나라 장서실(藏書室)의 사관(史官)을 지낸 데서 온 말이고, 도가봉래산이란 해중(海中)의 신산(神山)인 봉래산에는 유경(幽經), 비록(祕錄)들이 모두 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도가봉산[道家蓬山] 봉산은 봉래산(蓬萊山)인데, 후한(後漢) 동관(東觀)의 별칭이다. 후한서(後漢書) 권23 두장열전(竇章列傳)에 “이때에 학자들이 동관을 노씨장실(老氏藏室), 도가봉래산(道家蓬萊山)으로 일컬었는데, 등강(鄧康)이 이내 두장을 추천하여 동관의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노자가 수장리(守臧吏)가 되었다가 다시 주하사(柱下史)가 되었는데, 사방에서 기록한 문서가 모두 주하사로 돌아갔다. 이는 동관에 서적이 많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봉래는 해중의 신산(神山)으로 선부(仙府)이므로 비록(祕錄)들이 모두 있다.”라고 하였다. 후세에 왕실 도서관, 즉 규장각 등의 이칭으로 사용하였다.
도가위정[陶家慰情] 도가(陶家)는 도연명(陶淵明)의 집안으로, 슬하에 딸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도연명의 시 화유시상(和劉柴桑)에 “연약한 딸이 비록 사내아이는 아니지만, 마음 달래 주니 참으로 없는 것보다 낫다네.[弱女雖非男 慰情良勝無]”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이 시는 원래 도연명이 시상 영(柴桑令) 유정원(劉程元)이 딸만 있고 아들이 없는 것을 위로한 것이다. 도연명은 자가 원량(元亮)이며, 뒤에 이름을 잠(潛)으로 고쳤다. 혹자는 연명이 도잠의 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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