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간전선[陶侃戰船] 진(晉)나라 진민(陳敏)이 난을 일으킨 뒤에 동생 진회(陳恢)를 보내 무창(武昌)을 습격하자, 도간(陶侃)이 출동하여 방어하면서 운선(運船)으로 전함(戰艦)을 삼았는데, 혹자가 불가하다고 하니, 도간이 “관물(官物)로 관적(官賊)을 토벌하는 것이다.”라고 하고는 진회를 격파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도간절익[陶侃折翼] 진(晉)나라 도간(陶侃)이 젊을 때 여덟 개의 날개가 몸에 돋아서 하늘로 날아 올라가니 하늘 대궐의 문이 아홉 겹이었다. 여덟 개는 날아서 지나갔는데 마지막 한 문에서 문지기가 지팡이로 때리자 날개가 부러져 땅에 떨어졌다 한다. 뒤에 그는 8주(州)의 도독(都督)을 지내는 등 41년 동안 장상(將相)의 자리에 있었다. 그가 8주 도독이 되어 국가의 병권(兵權)을 휘어잡고 있을 때 몰래 왕의 자리를 엿보고 싶은 뜻이 생겼지만 그때마다 날개가 부러졌던 꿈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억제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66 陶侃傳>
도간조모운벽[陶侃朝暮運甓] 도간(陶侃)은 중국 진(晉)나라 때의 무장으로 통군(統軍) 40여 년 동안 많은 공을 세웠다. 일이 없을 때 아침이면 백 개의 벽돌을 집 안으로 옮기고 저녁에는 집 밖으로 옮겼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바야흐로 중원에 힘을 다하려 하는데 지나치게 편하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이다.[吾方致力中原 過爾優逸 恐不堪事]”라고 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도갈[陶葛] 도홍경(陶弘景)과 갈홍(葛洪)을 이른다. 도홍경은 남조(南朝) 때 단양(丹陽) 말릉(秣陵) 사람으로 화양은거(華陽隱居) 또는 산중재상(山中宰相)으로 불리는데 그는 유(儒)·석(釋)·도(道) 삼교(三敎)의 합류를 주장하였으며, 갈홍은 진(晉) 나라 구용(句容) 사람으로 포박자(抱朴子)라 자호(自號)하였는데 처음에는 유학(儒學)으로 이름났다가 나중에는 신선의 도양(導養)하는 법을 좋아하였다. <梁書 卷51 陶弘景傳> <晉書 卷72 葛洪傳>
도갈[道暍] 일반적으로는 길에서 햇볕에 노출되어 생기는 일사병(日射病)을 말한다.
도감[都監] 나라의 국상(國喪)·국혼(國婚) 및 궁궐의 건축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설치하는 임시 관사(官司)이다.
도감[都監] 돈이나 곡식 따위를 맡아보는 직책. 또는 그 사람.
도갑사[道甲寺] 영암 월출산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말 도선(道詵)이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도갑사 입구에 1090년(고려 선종7)에 만들어진 국장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고 11세기 후반에 번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1457년~1464년에 수미왕사가 크게 다시 세웠으며, 여러 차례 수리·복원하여 현재 모습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명부전, 미륵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그 외 도갑사해탈문, 도갑사석조여래좌상, 도갑사소조동자상, 도선수미비, 오층석탑, 수미왕사비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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