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전투[渡江轉闘] 손견(孫堅)의 아들 손책(孫策)이 17세 나이로 원술(袁術)을 찾아가 부친의 병사를 얻고서 양자강을 건너서 사방으로 전투[渡江轉闘]를 하며 나아가니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조금도 피해를 입히지 않으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손책이 뺨에 화살을 맞아 상처가 심해지자, 손권을 불러 군대의 인수(印綬)를 넘겨주면서 “강동(江東)의 백성을 이끌고 두 진영 사이에서 결전을 벌여 천하의 패권을 겨루는 것은 그대가 나보다 못하고, 현자를 발탁하고 유능한 신하를 등용하여 각기 마음을 다하게 하여 강동을 보전하는 것은 내가 그대보다 못하다.”라고 하고서 얼마 안 있어 26세의 나이로 죽었다. <資治通鑑 巻64 孝獻皇帝>
도강즙[渡江楫] 동진(東晉)의 장군 조적(祖逖)이 중원의 회복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서 초모(招募)한 군대를 이끌고 장강(長江)을 건너갈 적에, 강 한복판에서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노를 들어 뱃전을 치며 “내가 중원을 평정하지 않고서는 이 강을 다시 건너지 않겠다고 강을 두고서 맹세한다.[祖逖不能淸中原而復濟者 有如大江]”라고 다짐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2 祖逖列傳>
도개[到漑] 양(梁) 나라 사람으로 성은 도(到)이고 이름은 개(到)이다.
도객유혼[島客幽魂] 섬에서 죽은 사람들의 떠도는 영혼이라는 뜻이다. 진말(秦末) 제(齊)의 왕 전횡(田橫)의 종자(從者)들을 이른다. 전횡이 항우(項羽)와 싸워 제(齊) 땅을 회복하고 3년 동안 왕이 되었으나, 한(漢)에게 눌려 종자 5백명을 데리고 섬으로 망명해 들어가 있다가 한 고조(漢高祖)가 통일한 뒤에 항복하기를 명하매 부득이 두 객을 데리고 낙양(洛陽) 30리 밖까지 와서 자살했다. 섬에 있던 5백여 명도 전횡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자살했다. 동주 앞 바다에 ‘전횡섬[田橫島]’이 있다고 한다.
도갱소굴[屠坑燒掘]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 뒤이어 진(秦)나라 함양(咸陽)에 입성하여 함양의 백성을 도륙하고, 진왕 자영(子嬰)을 죽이고, 진나라 궁궐을 불사르고, 진 시황의 무덤을 파내 보화를 약탈하고 부녀자를 모아 동쪽으로 돌아가 진나라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린 일을 가리킨다. <史略 卷2 西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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