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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都賈]~도고[荼苦]~도고[逃故]~도고[都雇]~도고[屠沽]~도고[道故]


도고[都賈]  물건을 도거리로 혼자 맡아서 파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조선 후기 상품을 매점(買占) 또는 독점(獨占)하는 상업 행위와 개인 또는 조직의 상업 기구를 지칭하기도 한다. 도고(都雇), 도고(都庫), 도가(都家) 등으로 쓰이며, 독점 행위 그 자체는 도집(都執) 혹은 도취(都聚)라고도 한다.

도고[荼苦]  시경(詩經)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는가. 그 달기가 냉이와 같도다.[誰謂荼苦? 其甘如薺.]”라고 하였다.

도고[逃故]  도고는 도망한 자와 물고(物故) 난 자를 이른다.

도고[悼考]  도고(悼考)는 한 선제(漢宣帝)의 아버지이며 한 무제(漢武帝)의 장자(長子)인 여태자(戾太子)의 아들로 무제(武帝) 정화(征和) 2년에 무고(巫蠱)의 옥사(獄事)로 여태자(戾太子)와 함께 죽었는데, 선제가 즉위하여 도고(悼考)로 추존하였다.

도고[都雇]  물건이나 일 따위를 독점하여 처리하는 행위나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도고(都賈), 도고(都庫), 도고(都估)로도 쓴다.

도고[鼗鼓]  자루를 잡고 돌리면 양쪽에 단 구슬이 북면을 치도록 만든 작은 북이다.

도고[島高]  전체 섬의 높이에서 표목의 높이를 제한 것을 말한다.

도고[屠沽]  도고는 백정과 술장수 등 미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이른다. 후한서(後漢書) 권68 곽태열전(郭泰列傳)에 “소공자와 허위강 등은 모두 도고 출신이었다. …… 이들 60인 모두에 대해서 곽태가 이름을 이루게 해 주었다.[召公子許偉康 並出屠酤 …… 六十人 並以成名]”라고 하였다.

도고[屠沽]  도살업과 술집을 뜻한다. 한(漢)나라 매복(梅福)은 상서(尙書) 곡량춘추(穀梁春秋)에 밝은 학자였는데 왕망(王莽)이 집정하자 성명을 바꾸고 오주(吳州)의 저자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였다 한다. <漢書 卷67 梅福傳>

도고[屠沽]  제사에 쓸 희생물을 잡고 술을 파는 등 미천한 직업에 종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후한서(後漢書) 예형전(禰衡傳)에 “예형은 자가 평정이고 평원군 반현 사람인데, 어려서부터 변론에 뛰어나고 기질이 강직하여 오만하고 불손하였다 흥평 연간에는 형주로 피해 있었다. 건안 초, 허창을 유람한 뒤 영천에 이르러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주려고 자신의 이름을 새긴 명패를 갖고 다녔으나 끝내 자신을 추천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명패의 글씨가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때 허창이 새로운 도읍으로 세워지고 있어서 사방에서 현사대부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예형에게 ‘그대는 왜 진장문(陳長文)이나 사마백달(司馬伯達)을 찾아가지 않는가?’라고 하니, 예형이 ‘나더러 백정들과 어울리란 말이오?’라고 하였다.[禰衡字正平, 平原般人也. 少有才辨, 而常氣剛傲, 好矯時慢物. 興平中, 避難荆中. 建安初, 來遊許下. 始達潁川, 乃陰懷一刺, 旣而無所之適, 至於刺字漫滅. 是時許都新建, 賢士大夫四方來集. 或問衡曰: 蓋從陳長文·司馬伯達乎? 對曰: 吾焉能從屠沽兒耶.]”라고 하였다.

도고[道故]  친구와 만나 정답게 회포를 푸는 것을 의미한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오거(伍擧)가 진(晉)나라로 망명하러 가다가 정(鄭)나라 교외에서 친구를 만나 나뭇잎을 깔고 앉아서 다시 초나라로 돌아갈 일을 의논했다는 반형도고(班荊道故)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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