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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逃空], 도공[屠公], 도공결련[陶公結蓮], 도공관류[陶公官柳], 도공다[陶公茶]


도공[陶公]  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를 가리킨다. 도주공은 춘추 시대 월(越)나라 대부(大夫) 범려의 별칭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죽여서 회계(會稽)의 치욕을 씻었다.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가서 성명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고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부자가 되었다. 제왕(齊王)이 그를 승상으로 삼자, 범려는 승상인(丞相印)을 돌려주고 재물을 다 흩어 친지와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어진 일을 하고서, 도(陶)로 가서 다시 재산을 모아 억만장자가 되니 사람들은 그를 도주공(陶朱公)으로 불렀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도공[逃空]  빈 골짜기로 도망친다는 것은 산속에 들어가 은거함을 뜻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에 “텅 빈 골짜기로 도피해 숨어 사는 사람은 명아주와 콩잎이 족제비의 길마저 막고 있는 터라, 빈 골짜기에서 홀로 걷다가 쉬다가 하노라면, 다른 사람의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뻐하는 것이다.[逃空虛者, 藜藿柱乎鼪鼬之逕, 踉位其空, 聞人足音跫然而喜.]”라고 하였다.

도공[屠公]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하동 태수(河東太守)를 지낸 승도공(勝屠公)을 이른다. 당시 하동 도위(河东都尉) 주양유(周阳由)와 서로 비난하다가 죄를 얻었다. <史记 卷122 酷吏列传>

도공결련[陶公結蓮]  도공(陶公)은 동진(東晉) 때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결련(結蓮)은 백련사(白蓮社) 결사를 이른다.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일찍이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편지를 보내서 도잠을 불렀는데, 도잠이 말하기를 “제자는 본래 술을 좋아하니, 법사께서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즉시 가겠습니다.”라고 하므로, 혜원 법사가 허락해 주었다. 도잠이 법사를 찾아가자, 법사가 그제야 도잠에게 백련사에 들어와서 불법(佛法)을 수행하라고 권면하므로, 도잠이 마침내 눈썹을 찌푸리고 가 버렸다. <古今事文類聚續集 卷4>

도공관류[陶公官柳]  도공(陶公)은 진(晉)나라 명장(名將) 도간(陶侃)을 가리킨다. 도간(陶侃)이 일찍이 여러 군영(軍營)에 버들을 심게 하였는데, 도위(都尉) 하시(夏施)가 그 관류(官柳)를 훔쳐다가 자기 집 문앞에 옮겨 심었던바, 뒤에 도간이 지나다가 하시의 문앞에 있는 버들을 보고는 수레를 멈추고 “이것은 바로 무창 서문 앞에 있던 버들인데, 어찌하여 훔쳐다가 여기에 심었단 말인가.[此是武昌西門前柳 何因盜來此種]”라고 힐문하니, 그가 극구 사죄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도공다[陶公茶]  도공(陶公)은 송(宋) 나라 때 한림학사(翰林學士)였던 도곡(陶穀)을 가리킨다. 도곡이 일찍이 당 태위(党太尉) 집의 기녀(妓女)를 얻어 정도(定陶)에 들러 설수(雪水)를 취해 차를 끓이면서 그 기녀에게 말하기를 “당 태위의 집에서는 응당 이런 풍류를 모를 것이다.”라고 하자, 그 기녀가 대답하기를 “저 당 태위는 추솔한 사람이니 어찌 이런 풍류가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소금난장 아래에 앉아 천천히 술을 따르면서 미인의 고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양고미주를 마실 뿐이랍니다.[彼粗人也 安有此景 但能銷金暖帳下 淺斟低唱 飮羊羔美酒耳]”라고 하니, 도곡이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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