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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掉鬐]~도기[道器]~도기[都妓]~도기과[到記科]~도기단확[塗墍丹雘]


도기[掉鬐]  등지느러미를 흔들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 자소(自笑)에 “진창 모래 천지인데 지느러미 늦게 흔들었고, 하늘 가득 그물인데 경솔하게 날개 폈네.[泥沙滿地掉鬐晩, 網罟彌天舒翼輕.]”라 하여 진창에 갇힌 물고기나, 그물 속에서 날갯짓 하다가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자신을 조소하였다.

도기[導氣]  기를 끌어 모으고 호흡을 조절하는 것으로 일종의 양생술(養生術)을 이른다.

도기[道氣]  도기는 도(道)의 기운으로 세속을 초탈한 청정한 경지. 통속적인 사고를 초탈한 기질을 이른다.

도기[道機]  속세를 벗어나 도를 수양하는 영험한 기틀을 이른다.

도기[道器]  도(道)는 형상이 없는[無形] 사물의 이치를 말하고, 기(器)는 형상이 있는[有形] 구체적인 사물이나 제도 등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형이상의 것을 도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도기[道器]  불도(佛道)를 닦는 데 참고 견디는 기량(器量)을 이른다.

도기[圖記]  지리지(地理志)를 이른다.

도기[都妓]  조선 시대 관아에 속한 기생들의 우두머리. 국가 행사에 동원되었던 기생(妓生)들의 우두머리인 행수기생(行首妓生)을 달리 일컫는 말이다.

도기[到記]  도기란, 성균관(成均館) 및 사학(四學)의 거재유생(居齋儒生)의 근태(勤怠)를 보기 위하여 식당에 들어간 수를 적던 부책(簿冊)이다. 아침·저녁 두 끼를 1도(到)로 하여 50도가 되면 봄가을에 행하는 과거에 응할 자격을 주었다.

도기[到記]  성균관(成均館)이나 사학(四學)에서 유생들의 출석 여부와 출석 일수를 기록하던 장부로, 아침·저녁 두 끼를 식당에서 먹으면 1점으로 계산하였다. 이를 원점(圓點)이라고 하는데, 유생들은 원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해야 과거 응시 자격을 부여받았다. 반제(泮製)는 50점, 관시(館試 식년 문과 초시의 합격 정원 중 50명을 성균관에 할당하여 보이는 시험)는 300점을 기준으로 했다가, 정조(正祖) 때 대전통편(大典通編) 이후에는 반제의 기준을 연간 30점으로 조정하였다. <大典會通 禮典 諸科>

도기과[到記科]  도기유생(到記儒生)의 추시(秋試) 및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와 문신(文臣)의 제술(製述)에 동시에 내린 책문이다.

도기과[到記科]  조선 시대 사학(四學)의 유생 대표인 장의(掌議)와 색장(色掌), 성균관(成均館)의 하재(下齋)에 기재(寄齋)하는 유생 중에 도기(到記)의 원점(圓點)이 50도(度) 이상 되는 자를 대상으로 매년 봄가을에 강경(講經)과 제술(製述)로 시험하던 과거를 이른다. 도기(到記)는 식당에 비치한 장부의 일종인데, 아침과 저녁 두 끼를 1도(度)로 기록하였다. 임금의 특지(特旨)가 있으면 설행하였으며 장원한 자에게는 문과 복시 급제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銀臺條例 禮典 春秋到記> <大典會通 卷之三 禮典>

도기단확[塗墍丹雘]  벽에 흙을 바르고 단청을 칠함. 서경(書經) 주서(周書) 재재(梓材)에, 주 무왕(周武王)이 강숙(康叔)에게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 마무리를 잘하도록 타이르며 “비유하건대 집을 지을 적에 부지런히 담을 쌓았으면, 이제 벽에다 흙을 바르고 띠풀로 지붕을 덮어야 하는 것과 같으며, 노나무 재목을 다룰 적에 부지런히 다듬고 깎았으면, 이제는 단청(丹靑)을 칠해야 하는 것과 같다.[若作室家, 旣勤垣墉, 惟其塗墍茨, 若作梓材, 旣勤樸斲, 惟其塗丹雘.]”라고 하였다. 여기서 담을 쌓은 것과 재목을 다듬고 깎은 것은 무왕 자신이 이룬 사업을 비유하고, 흙을 바르고 지붕을 덮는 것과 단청을 칠하는 것은 강숙이 계승할 일을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무왕(武王)이 만든 법도를 강숙(康叔)이 잘 계승해 나가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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