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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방[都房], 도방[道傍], 도방고리[道傍苦李], 도방과자[道旁過者],


도방[都房]  도방은 큰 북당(北堂)의 뜻으로서 옛사람들이 그곳에 화초를 심곤 하였으므로 귀인(貴人)의 화원(花苑)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도방[都房]  고려 명종(明宗) 때의 무신인 경대승(慶大升)이 설치한 사병(私兵) 기관이다. 1179년(명종 9)에 정중부(鄭仲夫) 등을 제거한 후 신변보호를 위하여 설치한 것을, 최충헌(崔忠獻)은 6번(番)으로 확대하여 숙위(宿衛) 기관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에 왕정의 복구로 폐지되었다.

도방[道傍]  작사도방(作舍道傍)의 준말로, 길가에 집을 지으면서 행인들에게 물어보면 의견이 모두 달라서 잘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집을 지으면서 행인에게 묻는 것과 같은지라, 이 때문에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도다.[如彼築室于道謀 是用不潰于成]”라고 한 것에서 나왔다.

도방고리[道傍苦李]  길가에 버려진 쓴 오얏이라는 뜻으로, 버려지고 돌보는 이 없는 사람, 또는 남에게서 버림받음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융(王戎)이 어렸을 때 한번은 여러 아이들과 길가에서 장난을 하고 놀다가, 마침 오얏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서로 다투어 달려가는데 왕융은 꼼짝하지 않고 있으므로, 혹자가 그 까닭을 묻자, 왕융이 “오얏나무가 길가에 있는데 열매가 많이 달려 있으니, 이것은 반드시 쓴 오얏일 것이다.[樹在道邊而多子 必苦李也]”라고 하므로, 그것을 따서 맛보니 참으로 그러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3 王戎列傳》

도방고리[道傍苦李]  길가의 쓰디쓴 오얏이라는 말로, 아무도 따는 사람이 없이 버림받는다는 의미이다. 왕융(王戎)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동네의 같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데, 저쪽 길가에 오얏나무 한그루가 가지가 휘어질 만큼 많은 열매를 매어단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그 열매를 따려고 앞을 다투어 달려갔다. 그런데 왕융 혼자만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던 사람이 “너는 왜 열매를 따러 달려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왕융이 무덤덤하게 “길가에 있는데, 아직도 저렇게 열매가 많이 매달려 있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할 열매이기 때문입니다.[樹在道邊而多子 必苦李也]”라고 대답하였다. 아이들이 열매를 따 맛을 보니 왕융의 말대로 과연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도방과자[道旁過者]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도방리고오투육[道傍吏苦烏偸肉]  관리가 길가에서 밥을 먹다 까마귀에게 고기를 빼앗기는 고통까지 당함. 정사(政事)의 치밀함을 비유한 말이다. 한(漢) 나라 때 황패(黃覇)가 영천태수(潁川太守)로 있을 적에 민정을 사찰할 일이 있어 나이 많은 청렴한 한 아전을 골라 내보냈는데, 그 아전이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길가에서 밥을 먹을 때 까마귀가 고기를 훔쳐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황패는 이 일을 다른 백성으로부터 이미 전해 듣고 있다가 그 아전이 사찰을 마치고 돌아오자, 황패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대단히 고생이 많았다. 길가에서 밥을 먹다가 까마귀에게 고기까지 빼앗겼구나.[甚苦! 食於道旁乃為烏所盜肉.]”라고 하니, 그 아전이 크게 놀라 한 가지 일도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보고함으로써 일을 잘 조처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八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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