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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부위실[陶復爲室], 도부좌[桃符座], 도부증전[桃符繒篆], 도부황극[道扶皇極]


도부위실[陶復爲室]  도복위실. 땅을 판 후 흙으로 집을 만듦. 도(陶)는 도혈(陶穴)인데, 땅을 파서 만든 흙집[土室]이다. 복(復) 또한 땅 밑을 파서 만든 집[地室]이다. 주(周)나라 태왕(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우고서 처음으로 국호(國號)를 주(周)라고 하였는데, 시경(詩經) 대아(大雅) 면(綿)에 “고공단보께서는 땅을 파고 혈거(穴居) 생활을 하였을 뿐, 아직 번듯한 집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 ”는 도복도혈(陶復陶穴)의 고사가 실려 있다.

도부장[到付狀]  공문(公文)을 접수하였다는 보고서이다.

도부좌[桃符座]  사마유(司馬攸)는 사마소(司馬昭)가 자신이 앉은 자리를 어루만지며 “이 자리는 도부(사마유司馬攸)의 자이리다.[此桃符座也]”라고 말할 정도로 사마소에게 매우 사랑을 받았으며, 사마소가 임종 시에는 또 조비(曹丕)의 아우 조식(曹植)의 일을 언급하며 직접 사마유의 손을 잡아 무제(武帝)에게 주기도 하였다. 태후 역시 임종 시에 눈물을 흘리며 “도부는 성질이 급한데 너는 형이 되어 자애롭게 대해주지 않으니, 내가 만약 일어나지 못한다면 네가 필시 용납하지 못할까 걱정된다. 이 때문에 너에게 부탁하니 나의 말을 잊지 말라.[桃符性急 而汝爲兄不慈 我若不起 必恐汝不能相容 以是屬汝 勿忘我言]”라고 하여 무제에게 우애를 부탁한 일이 있다. <資治通鑑 卷80 晉紀2 武帝 上之下 咸寧 2年>

도부증전[桃符繒篆]  도부(桃符)는 본래 고대에 새해를 맞이하여 복숭아나무 판자[桃木板] 두 개에다 신도(神荼), 울루(鬱壘)라는 두 신명(神名)을 써서 문 양쪽에 걸어 사귀(邪鬼)를 물리치던 부적(符籍)을 가리킨다. 오대(五代) 시대에는 복숭아나무 판자에 상서로운 일을 바라는 대구(對句)의 글을 써 걸었는데, 그 뒤로 종이에다 쓰고 춘련(春聯)이라고 불렀다. 증전(繒篆)은 채색 비단에 전자(篆字)로 쓴 부적이다. 단오 풍속에 이들로 궁액을 막았다고 한다.

도부황극[道扶皇極]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다섯 번째 황극은 임금이 극을 세움이다.[五皇極 皇建其有極]”라고 하였다. 이는 제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대중(大中)하고 지정(至正)한 법칙을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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