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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불습유 산무도적[道不拾遺 山無盜賊], 도불습유[途不拾遺]


도불습유 산무도적[道不拾遺 山無盜賊]  국가나 고을에 치안(治安)이 잘 유지되어 사람들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고 산에는 산적이 없음을 이른다.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법령을 시행한 지 10년이 되자 진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여 길에서는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고 산에는 도적이 없게 되었다. 집집마다 부유하고 사람마다 배부르고 따뜻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이 공적인 전투에서는 용감하고 사적인 싸움은 겁을 내었다.[行之十年 秦民大說 道不拾遺 山無盜賊 家給人足 民勇於公戰 怯於私鬪]”라고 하였다.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음의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는다. 나라가 잘 다스려져 태평하고 풍부한 세상을 형용하는 말이다. 후한기(後漢紀) 권22 효환황제기(孝桓皇帝紀)에 “서치가 사는 곳의 주민들이 그의 덕에 감화된 나머지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았다.[所居服其德化 道不拾遺]”라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권53 서치열전(徐穉列傳)에 “도가 있다고 조정에 추천되어 집에서 태원 태수의 임명을 받기도 하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擧有道 家拜太原太守 皆不就]”라고 하였다.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형벌이 준엄하여 백성이 법을 범하지 아니하거나 민심이 순후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 상(外儲說左上)에 “자산이 물러나와 정사를 맡으니 5년 만에 나라에는 도둑이 없어지고 길에서는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子産退而爲政, 五年, 國無盗賊, 道不拾遺.]”라고 하였다. 또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는, 상군(商君)이 진(秦)나라를 다스리자 법령이 크게 행해지고 공평무사하여 “1년이 지난 뒤에는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으며, 백성이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일도 없어졌다.[期年之後, 道不拾遺, 民不妄取.]”라고 하였다.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것도 줍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믿음이 차 있는 세상의 아름다운 풍속을 이르는 말이다. 법이 엄격하게 시행되어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자가 없을 만큼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는 뜻이다. 세상이 안정(安定)되고, 민심(民心)이 순박(淳朴)함을 비유한 말이다. 노불습유(路不拾遺)라고도 한다. 유사한 표현으로 도부유습(道不遺拾: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음), 야불폐호(夜不閉戶: 밤에 문을 닫지 않음)이라는 말도 있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제(齊)나라 위왕(威王)을 만나 자신의 나라에는 수레를 앞뒤로 12채씩 비출 만한 보석이 있다고 하면서, 제나라에 보물이 있냐고 물어본 데 대한 위왕의 대답에 “과인이 보배로 여기는 것은 왕과 다릅니다.……저의 신하 중에 종수란 자가 있는데, 그에게 도적을 방비하게 하면 길에 떨어진 것도 주워가지 않습니다. 이들이 장차 천 리를 비출 테니 어찌 다만 12채 뿐이겠습니까.[寡人之所以爲寶者, 與王異.……吾臣有種首者, 使備盜賊, 則道不拾遺. 將照千里, 豈特十二乘哉?]”라고 하였다. <史記 卷46 田敬仲完世家>

도불습유[途不拾遺]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百姓)의 풍속(風俗)이 돈후(敦厚)함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형벌(刑罰)이 준엄(峻嚴)하여 백성(百姓)이 법을 범(犯)하지 아니함의 뜻으로도 쓰인다. 도불습유(道不拾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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