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徒死] 공연한 죽음.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죽음으로써 도를 선하게 해야 한다.[篤信好學 守死善道]”라고 하였다. 그 집주(集注)에 “독실히 믿지 않으면 배우기를 좋아할 수 없으나, 독실히 믿으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믿는 바가 혹 바른 것이 아닐 수 있고, 죽기로써 지키지 않으면 그 도를 선하게 할 수 없으나, 죽기로써 지키기만 하고 그 도를 선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또한 공연한 죽음일 뿐이다.[不篤信則不能好學 然篤信而不好學 則所信或非其正 不守死則不能以善其道 然守死而不足以善其道 則亦徒死而已]”라고 하였다.
도사[倒屣] 도사(倒屣)는 달려가 맞이하는 데 급급하여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는 뜻으로, 매우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 권21 위서(魏書) 왕찬전(王粲傳)에 “당시 채옹(蔡邕)은 재학이 뛰어나고 조정에서 귀중하여 늘 수레가 길을 메우고 빈객이 자리에 가득하였는데, 왕찬(王粲)이 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가 맞이하였다. 왕찬이 도착하자 나이가 어린 데다 용모도 작달막하여 온 좌중이 모두 놀라니, 채옹이 ‘이 사람은 왕공의 자손으로 빼어난 재주가 있으니, 나는 그만 못하다.’라고 하였다.[時, 邕才學顯著, 貴重朝廷, 常車騎填巷, 賓客盈坐. 聞粲在門, 倒屣迎之. 粲至, 年既幼弱, 容狀短小, 一坐盡驚. 邕曰: 此王公孫也, 有異才, 吾不如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도사[倒屣] 신발을 거꾸로 신음. 신발을 거꾸로 신을 만큼 손님을 맞기 위해 급하게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삼국(三國) 시대 위(魏)의 채옹(蔡邕)은 재학(才學)이 뛰어나서 찾아오는 빈객이 항상 문에 그득했는데, 왕찬(王粲)이 장안(長安)에 와서 채옹(蔡邕)을 방문하자, 채옹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문으로 나아가 맞이해 들어왔는데, 왕찬의 나이가 어린 데다 용모도 단소(短小)하였으므로, 모인 빈객들이 놀랐다는 고사가 있다. 전하여 찾아오는 손을 몹시 환영하는 뜻으로 쓰인다. <三國志 卷21 魏志 王粲傳> 참고로, 피일휴(皮日休)의 시 초하즉사기노망(初夏卽事寄魯望)에 “누군가 나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급하게 달려나가 반갑게 맞네.[敲門若我訪, 倒屣欣奉迎.]”라고 하였다. 거꾸로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도사[道士] 도교(道敎)를 닦는 이. 양생을 수련하는 도교(道敎) 수행자. 신선의 술(術)을 터득한 수험자(修驗者). 송(宋)나라 악사(樂史)가 저작한 양귀비외전(楊貴妃外傳)에 따르면, 양통유(楊通幽)는 도사(道士)로서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 올 수 있다 하여, 당(唐) 명황(明皇)이 촉(蜀)에서 온 양통유(楊通幽)에게 명하여 양귀비(楊貴妃)의 혼백이라도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고 한다.
도사[道士] 화상(和尙), 불교도(佛敎徒). 모융(牟融)의 이혹론(理惑論)에 “내가 일찍이 우전국을 유람할 때 출가수행자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僕嘗遊于闐之國, 數與沙門道士相見.]”라고 하였고,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지도림 화상이 말을 키우는 것을 본 사람들이 ‘스님이 말을 키우는 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지도림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말의 의젓한 풍채요.’라고 하였다.[支道林常養數匹馬, 或言道人畜馬不韻, 支曰: 貧道重其神駿.]”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