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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금수[圖寫禽獸], 도사비가[屠肆悲歌], 도사수[陶謝手], 도사영[倒屣迎]


도사금수 화채선령[圖寫禽獸 畫綵仙靈]  궁전(宮殿)과 루관(樓觀)에 새와 짐승을 그리고, 신선과 신령을 그려 채색함. 도(圖)와 사(寫)는 모두 그린다는 뜻이다. 나는 짐승을 금(禽)이라 하고 달리는 짐승을 수(獸)라 한다. 오색(五色)으로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을 화(畫)라고 한다. 채(綵)는 색칠한다는 뜻이다. 석명(釋名)에 이르기를 “늙어도 죽지 않으면 이를 일러 선(仙)이라 한다. 선(仙)이란 사는 곳을 옮긴다는 뜻이다. 사는 곳을 떠나 산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이 글자를 만들 때 人방에다가 山이라는 글자를 쓴다.[老而不死曰仙. 仙, 遷也, 遷入山也. 故其制字人旁作山也.]”라고 하였다. 령(靈)은 신(神)이다.

도사금수[圖寫禽獸]  궁전(宮殿) 내부(內部)에는 유명(有名)한 화가(畵家)들이 그린 그림 조각 등(等)으로 장식(裝飾)되어 있음을 이른다.

도사다[都史多]  범어(梵語) Tuṣita의 음역으로, 보통 도솔천(兜率天)이라고 한다. 도솔천은 불교의 이른바 욕계(欲界) 육천(六天) 가운데 넷째 층에 있는 하늘로, 외원(外院)과 내원(內院)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이 내원에서 미래불(未來佛)로 이 땅에 하생(下生)하려고 준비하면서 천신(天神)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도사령[都使令]  뭇 사령(使令) 중에 으뜸가는 사령이다. 사령(使令)은 조선 시대, 관아에서 심부름 따위의 미천한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을 이르던 말이다.

도사비가[屠肆悲歌]  형가(荊軻)가 연(燕)나라 서울 저잣거리에서 개백장과 축(筑)의 명인 고점리(高漸離)와 더불어 서로 어울려서 고성방가(高聲放歌)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노닐다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요청으로 진 시황(秦始皇)을 죽이기 위해 출발할 즈음에, 이른바 역수한풍(易水寒風)의 비가(悲歌)를 부르고 떠난 고사가 있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도사소[徒師沼]  위(魏)나라 대부(大夫). 행적은 미상이다.

도사수[陶謝手]  도사(陶謝)는 남조(南朝) 송(宋) 때의 도잠(陶潛)과 사영운(謝靈運)을 병칭한 말인데, 도잠은 전원시(田園詩)를 잘 지었고, 사영운은 산수시(山水詩)를 잘 지어서 두 사람이 모두 자연의 경물(景物)을 묘사하는 데 뛰어났다. 두보(杜甫)의 시 강상치수여해세료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에 “어찌하면 도사와 같은 시상과 솜씨 지닌 이를 얻어, 그들로 하여금 시 짓게 하고 함께 노닐 수 있을꼬.[焉得思如陶謝手, 令渠述作與同遊?]”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0>

도사영[倒屣迎]  삼국(三國) 시대 위(魏)의 채옹(蔡邕)이 뛰어난 재학(才學)으로 명성이 매우 높아서 빈객이 항상 문에 그득했는데, 일찍이 나이 어린 재사(才士) 왕찬(王粲)이 문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는 신을 거꾸로 신고 나가서 그를 맞이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찾아간 빈객을 대단히 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지(三國志) 권21 위서(魏書) 왕찬전(王粲傳)에 “당시 채옹(蔡邕)은 재학이 뛰어나고 조정에서 귀중하여 늘 수레가 길을 메우고 빈객이 자리에 가득하였는데, 왕찬(王粲)이 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가 맞이하였다. 왕찬이 도착하자 나이가 어린 데다 용모도 작달막하여 온 좌중이 모두 놀라니, 채옹이 ‘이 사람은 왕공의 자손으로 빼어난 재주가 있으니, 나는 그만 못하다.’라고 하였다.[時, 邕才學顯著, 貴重朝廷, 常車騎填巷, 賓客盈坐. 聞粲在門, 倒屣迎之. 粲至, 年既幼弱, 容狀短小, 一坐盡驚. 邕曰: 此王公孫也, 有異才, 吾不如也.]”라고 하였고, 송(宋)나라 육유(陸游)의 시 기제서재숙수재동장(寄題徐載叔秀才東莊)에 “남대(南臺)의 중승(中丞)은 걸상을 쓸고서 만나고, 북문(北門)의 학사는 신발을 거꾸로 신고서 마중한다.[南臺中丞掃榻見, 北門學士倒屣迎.]”라고 한 데서 보인다. <劍南詩藁 卷21 寄題徐載叔秀才東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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