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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제사[禱祠祭祀], 도사초연[陶謝超然], 도사행[陶士行], 도사흔영[倒屣忻迎]


도사제사[禱祠祭祀]  네 가지 종류의 제사 이름이다. 이는 마치 상(庠)·서(序)·학(學)·교(校)가 조금씩 뜻이 다르지만 모두 학궁(學宮)인 것과 같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도(禱)하고 사(祠)하고 제(祭)하고 사(祀)하며 귀신에게 제물(祭物)을 바치는 것도 예(禮)가 아니면 내면이 성실하지도 않고 외면이 장엄하지도 않게 된다.[禱祠祭祀 供給鬼神 非禮 不誠不莊]”라는 말이 나온다. 원(元)나라 진호(陳澔)가 지은 예기집설(禮記集說)의 해설에 따르면 “도(禱)는 구복(求福)하는 것으로 뜻을 삼고, 사(祠)는 문(文)을 위주로 하고, 제(祭)는 봉양하는 것으로 일을 삼고, 사(祀)는 안(安)으로 도를 삼는다.[禱以求爲意 祠以文爲主 祭以養爲事 祀以安爲道]”라고 하였다.

도사찬[都師贊]  都師(도사)는 都斯(도사)라고도 쓴다. 춘추후어(春秋後語)에는 도사(堵師)는 복성(複姓), 찬(贊)은 이름, 위(魏)의 대부(大夫)라 하였다.

도사초연[陶謝超然]  도사(陶謝)는 도연명(陶淵明)과 사령운(謝靈運)을 가리키며, 초연(超然)은 자연스럽고 초탈함을 이른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진(晉)나라 때의 저명한 시인으로 심양(潯陽) 사람인데, 이름은 잠(潛)이고 자(字)는 원량(元亮)이며 연명(淵明)은 그의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자(字)라 하기도 하는바,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다. 사령운(謝靈運 385~433)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송(宋)나라의 저명한 시인으로 자(字)가 선명(宣明)이고 양하(陽夏) 사람이다. 소식(蘇軾) 서황자사시집후(書黃子思詩集後)에 “소무(蘇武)와 이릉(李陵)의 자연적으로 이룸과 조식(曹植)과 유정(劉楨)의 자득함과 도연명(陶淵明)과 사령운(謝靈運)의 초연함이 지극하였는데,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영특하고 아름다워 세상에 뛰어난 자질로 백대(百代)를 능가하니, 고금의 시인(詩人)들이 모두 빛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위·진시대(魏晉時代) 이래로 세속을 뛰어넘는 높은 풍조도 조금씩 쇠퇴하였다.[蘇李之天成, 曹劉之自得, 陶謝之超然, 蓋亦至矣, 而李太白·杜子美以英瑋絶世之姿, 凌跨百代, 古今詩人盡廢, 然魏晉以來, 高風絶塵, 亦少衰矣.]”라고 하였다.

도사촌[道沙村]  현 경상남도 창녕군 남곡면으로, 조선 시대에는 영산군에 속했었다.

도사행[陶士行]  사행(士行)은 진(晉)나라 도간(陶侃)의 자이다. 그는 지방의 수령을 맡으면서도 천하의 일을 근심하며 부지런하게 정사를 행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광주자사(廣州刺史)로 재임 중에, 고을을 다스리는 일이 한가할 때면 매일 아침에 벽돌 100장을 집 안에서 밖으로 운반하고, 저녁에는 다시 밖에서 안으로 운반하면서, 신체를 단련하고 뜻을 가다듬곤 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나는 바야흐로 중원(中原)의 통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너무 한가하게 지내다 보면 이 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같아서 그런다.”라고 하였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도사행[陶士行]  진(晉)나라 도간(陶侃). 사행은 그의 자(字). 그는 어려서 가난하였으나 현리(縣吏)가 되어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며 남만장사(南蠻長史)·시중태위(侍中太尉)를 거쳐 대장군(大將軍)에 봉해졌다. 군대에 있던 41년 동안 명석하게 결단을 잘하여 남릉(南陵)부터 백제(白帝)에 이르기까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광주자사(廣州刺史)가 되어 왕기(王機) 등을 격퇴하여 광주에서 일이 없자, 매일 새벽에 집 밖에 벽돌 100개를 운반했다가 날이 저물면 집 안으로 운반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답하기를 “나는 바야흐로 중원(中原)에 힘을 다하고 있는데, 너무 편안하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도사흔영[倒屣忻迎]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의 채옹(蔡邕)이 뛰어난 재학(才學)으로 명성이 매우 높아서 빈객이 항상 문에 그득했는데, 일찍이 나이 어린 재사(才士) 왕찬(王粲)이 그의 문에 이르렀을 때, 채옹이 신을 거꾸로 신은 채 허겁지겁 달려 나가서 그를 흔연히 맞이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찾아간 빈객을 대단히 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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