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도상[倒裳], 도상무명[道常無名], 도상문우[道上問牛], 도상방략[圖上方略]


도상[倒裳]  옷을 거꾸로 입다. 옷을 뒤집어 입다. 소식(蘇軾)의 시 화도연명의고(和陶淵明擬古)에 “주인은 책 베고 누워서, 나의 평소 친한 벗 꿈꾸었다오.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놀라 꿈 깨어 한 잔 술 엎질렀네. 의상 거꾸로 입고 일어나 손님에게 사례하니, 꿈속에서나 깨어서나 모두 저버린 것 부끄러워라.[主人枕書臥, 夢我平生友. 忽聞剝啄聲, 驚散一盃酒. 倒裳起謝客, 夢覺兩愧負.]”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도상도하지심[度上度下之心]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10장 주희(朱熹)의 주(注)에 “내가 만일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함을 원하지 않거든, 반드시 이로써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 역시 감히 이 무례함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이 나에게 불충함을 원하지 않거든, 반드시 이로써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 역시 이 불충함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如不欲上之無禮於我, 則必以此度下之心, 而亦不敢以此無禮使之; 不欲下之不忠於我, 則必以此度上之心, 而亦不敢以此不忠事之.]”라고 하였다.

도상림[禱桑林]  은(殷)나라의 탕(湯)이 7년 대한(大旱)에 큰 가뭄 때에 상림에서 기우제 지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상무명[道常無名]  도(道)의 질박함. 노자(老子) 제20장에 “도는 언제나 이름도 없고 질박한 것이다.[道常無名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도상문우[道上問牛]  정승의 직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漢) 나라 병길(丙吉) 승상(丞相)이 되어 길을 갈 때 사람 죽은 것을 보고는 아무 말을 않더니, 어떤 사람이 소를 쫓아가는데 소가 헐떡이며 혀를 내뽑는 것을 보고 하인을 시켜 “소를 몇 리나 쫓아왔느냐.”라고 물어보았다. 옆의 사람이 그까짓 것은 왜 묻느냐고 하자 “사람이 죽은 것은 경조윤(京兆尹)이 걱정할 일이요, 삼공(三公)은 음양(陰陽)의 조화(調和)함을 맡았으니 지금 보니까 소가 헐떡이니 혹시 음양이 고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물었노라.”라고 하였다 한다. <漢書 丙吉傳>

도상방략[圖上方略]  조충국(趙充國)은 한 무제(漢武帝) 때 영평후(營平侯)에 봉해진 사람이다. 한나라 선제(宣帝) 때에 오랑캐의 침입이 빈번하자, 어사대부(御史大夫) 병길(丙吉)이 침입을 막아 낼 적임자가 누구인지 조충국에게 물었는데, 조충국이 자기만 한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선제가 조충국을 불러서 오랑캐들의 정황이 어떠하며 군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묻자, 그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느니만 못합니다. 병사(兵事)는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신이 금성에 가서 방략을 그려서 올리겠습니다.[百聞不如一見 兵難隃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라고 하였다. <漢書 卷69 趙充國傳> 금성(金城)은 감숙성(甘肅省) 동부에 있던 지명이다.

도상습고[蹈常襲故]  답습하다. 구태의연하다. 선인(先人)의 의논·시문(詩文) 또는 주장 등을 도용(盜用)하여 자기 것으로 함을 이른다.

도상의사[島上義士]  도상(島上)의 의사는 한나라 초 전횡(田橫)을 따라 자살한 500인의 의사를 가리킨다. 전횡은 제(齊)나라 왕 전영(田榮)의 아우로서, 한나라 고조(高祖)가 즉위하자 무리 500여 인을 이끌고 동해의 섬에 들어가 살았다. 한 고조가 그를 회유하여 부르자 낙양(洛陽)으로 가던 도중 30리 못 미친 지점에서 탄식하기를 “내가 처음에 한왕(漢王)과 같이 남면(南面)하여 고(孤)라고 칭했는데, 이제 와서 북면(北面)하여 섬길 수는 없다.”라 하고 자살하였는데, 섬에 있던 500여 명의 사람도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자결하였다. <史記 卷94 田儋列傳>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