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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섭흔영[倒屧忻迎], 도성[屠城], 도성선[道性善], 도성탕[禱成湯]


도섭흔영[倒屧忻迎]  도사흔영(倒屣忻迎).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의 채옹(蔡邕)이 뛰어난 재학(才學)으로 명성이 매우 높아서 빈객이 항상 문에 그득했는데, 일찍이 나이 어린 재사(才士) 왕찬(王粲)이 그의 문에 이르렀을 때, 채옹이 신을 거꾸로 신은 채 허겁지겁 달려 나가서 그를 흔연히 맞이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찾아간 빈객을 대단히 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지(三國志) 권21 위서(魏書) 왕찬전(王粲傳)에 “당시 채옹(蔡邕)은 재학이 뛰어나고 조정에서 귀중하여 늘 수레가 길을 메우고 빈객이 자리에 가득하였는데, 왕찬(王粲)이 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가 맞이하였다. 왕찬이 도착하자 나이가 어린 데다 용모도 작달막하여 온 좌중이 모두 놀라니, 채옹이 ‘이 사람은 왕공의 자손으로 빼어난 재주가 있으니, 나는 그만 못하다.’라고 하였다.[時, 邕才學顯著, 貴重朝廷, 常車騎填巷, 賓客盈坐. 聞粲在門, 倒屣迎之. 粲至, 年既幼弱, 容狀短小, 一坐盡驚. 邕曰: 此王公孫也, 有異才, 吾不如也.]”라고 하였고, 송(宋)나라 육유(陸游)의 시 기제서재숙수재동장(寄題徐載叔秀才東莊)에 “남대(南臺)의 중승(中丞)은 걸상을 쓸고서 만나고, 북문(北門)의 학사는 신발을 거꾸로 신고서 마중한다.[南臺中丞掃榻見, 北門學士倒屣迎.]”라고 하였다. <劍南詩藁 卷21 寄題徐載叔秀才東莊>

도성[都省]  상서성(尙書省)을 이른다. 국정(國政)의 최고 기관으로 정무(政務)를 관장하여 모든 정령(政令)이 이곳에서 나왔다. 한편 군무(軍務)는 추밀원(樞密院)이, 재정(財政)은 삼사사(三司使)가 관장하였다.

도성[屠城]  성을 도륙(屠戮)함. 성(城)이 함락(陷落)되면 그 안의 사람들이 살육(殺戮)된다는 뜻으로, 성이 함락(陷落)됨의 비유(比喩)하는 말이다.

도성[道成]  제 고제(齊高帝) 소도성(蕭道成)이다. 남조(南朝) 제(齊)나라 개국 군주로, 남조 송(宋)나라 황실의 내분을 틈타 군정(軍政) 대권을 장악하였다. 송나라 후폐제(後廢帝)를 죽이고 순제(順帝)를 옹립하였다가 곧바로 순제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다. <中國歷代人名大辭典 齊高帝>

도성[濤聲]  파도(波濤) 소리. 물결치는 소리. 백거이(白居易)의 시 항주춘망(杭州春望)에 “밤중의 파도 소리는 오원의 사당으로 들고, 봄날의 버들 빛은 소소의 집에 갈무리했네.[濤聲夜入伍員廟 柳色春藏蘇小家]”라고 하였다.

도성덕립[道成德立]  도를 이루어 덕이 섬. 도를 완성하고 덕을 확립함.

도성선[道性善]  성선을 말함.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주장함. 이때 ‘道’는 ‘말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에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 때마다 반드시 요순을 예로 들었다.[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라고 하였다.

도성탕[禱成湯]  성탕(成湯)은 은(殷)나라를 세운 임금이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즉위한 뒤에 7년 만에 큰 가뭄이 들자 성탕이 상림(桑林)에서 비를 빌면서 여섯 가지 일로 자책(自責)하였다.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성탕이 비를 빌면서 자책하기를 ‘정사가 잘 시행되지 않았는가? 백성을 병들도록 부렸는가? 왜 이처럼 극도로 가물단 말인가? 궁궐이 호화스러운가? 여인들의 간섭이 흥행한 것인가? 왜 이처럼 극도로 가물단 말인가? 뇌물이 성행한 것인가? 참소가 성행하였는가? 왜 이처럼 극도로 가물단 말인가?’ 하였다.[湯旱而禱曰, 政不節歟. 民失職歟. 何以不雨至斯極也. 宮室崇歟. 女謁盛歟. 何以不雨至斯極也. 苞苴行歟. 讒夫昌歟. 何以不雨至斯極也.]”라고 하였다. 또, 십팔사략(十八史略) 권1 은왕성탕(殷王成湯)에 “7년 동안 큰 가뭄이 드니, 태사가 점을 쳐 ‘사람으로 제물을 바치고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탕 임금은 ‘내가 기우제를 지냄은 백성을 위함인데, 만약 사람으로 제물을 삼는다면 내가 스스로 감당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목욕재계하고 손톱을 깎고 머리를 자르고 흰 띠풀로 몸을 묶어 자신을 희생으로 삼아, 상림의 들판에서 기도를 올리며 여섯 가지 일로 자신을 책망하기를, ‘정사가 절도를 잃었습니까, 백성이 직업을 잃었습니까. 궁궐이 너무 컸습니까. 여인의 청탁이 성행했습니까. 뇌물이 횡행했습니까. 참소하는 자가 많았습니까.’라고 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려 수천 리를 적셨다.[大旱七年 太史占之曰 當以人禱 湯曰 吾所爲請者民也 若必以人禱 吾請自當 遂齋戒 剪爪斷髮 身嬰白茅 以身爲犧牲 禱于桑林之野 以六事自責曰 政不節歟 民失職歟 宮室崇歟 女謁盛歟 苞苴行歟 讒夫昌歟 言未已 大雨方數千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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