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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명옥[蹈繩鳴玉], 도시[屠市], 도시[倒屣], 도시[都是], 도시[都試]


도승[賭勝]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도승명옥[蹈繩鳴玉]  규범이나 법도를 잘 지키면서 지냈다는 뜻이다. 먹줄은 법도를 말하고, 옥을 울렸다는 것은 옥을 차고 다녔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이르기를 “옛적에 군자가 반드시 옥을 찼으니……수레를 타면 말방울 소리를 듣고 걸을 때는 패옥 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그릇되고 간사한 마음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古之君子必佩玉……君子在車, 則聞鸞和之聲, 行則鳴佩玉. 是以非辟之心無自入也.]”라고 하였다.

도승첩[度僧牒]  새로 중이 된 사람에게 관청에서 발급하는 허가증이다. 도첩(度牒)이라 칭한다. 당송(唐宋)시대에 관청에서 도첩을 발급하고 군정비용을 충당하였다.

도승학[陶承學]  명(明)나라 회계(會稽) 사람으로 자는 자술(子述), 시호는 공혜(恭惠), 벼슬은 남경 어사(南京御史)·휘주지부(徽州知府)·하남 포정사(河南布政使) 등을 거쳐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하였다. 백성을 애양(愛養)하고 청렴결백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萬斯同明史 卷318 陶承學> <國朝獻徵錄 卷34> <本朝分省人物考 51>

도시[屠市]  백정이나 장사꾼. 개백정의 시정(市井). 형가(荊軻)가 일찍이 연나라의 개백정[狗屠] 및 축(筑)을 잘 연주하던 고점리(高漸離)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날마다 그들과 함께 도성 거리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서로 즐겼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86 荊軻列傳>

도시[屠市]  푸줏간이 있는 저잣거리를 말한다. 전국 시대 연경(燕京)의 저자에서 백정을 하다가 진 시황(秦始皇)을 암살하러 간 자객인 형가(荊軻)의 유적지를 가리킨다.

도시[陶詩]  동진(東晉)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시를 말한다. 도연명집(陶淵明集) 권8이 전한다.

도시[倒屣]  도사(倒屣).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로, 대단히 반가워한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 왕찬(王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왕찬(王粲)은 한 대에 삼공을 지냈다. 왕찬은 재능이 뛰어나 바둑판이 흐트러져도 즉시 원상태로 복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헌제가 잠시 서쪽으로 옮겼을 때 장안으로 이주를 했다. 그곳에는 학문이 뛰어난 좌중랑장 채옹(蔡邕)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늘 손님으로 붐볐다. 어느 날 왕찬이 그의 집을 방문하자 채옹은 신발을 거꾸로 신고나가 그를 영접했다[倒屣迎之]. 왕찬이 들어오자 빈객들은 그의 나이가 어리고 용모가 왜소했으므로 외면했다. 이에 채옹은 “이 사람은 왕공의 손자로서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소. 나는 그보다 못하오. 우리 집에 있는 서적과 문학작품은 모두 그에게 주려고 합니다.[此王公孫也, 有異才, 吾不如也.]”라고 극찬을 하였다. 이때부터 도시(倒屣)는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는 뜻으로, 대단히 반가워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삼국지(三國志) 권21 위서(魏書) 왕찬전(王粲傳)>

도시[都是]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전혀. 도무지. 전혀. 모두 긴요함.

도시[都試]  조선 시대 무과 시험의 한 가지이다. 중앙에서는 병조(兵曹)와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당상관(堂上官), 지방은 관찰사(觀察使)와 각 진영(鎭營)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주관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무사(武士)를 선발하는 제도이다. 여기에 합격한 사람은 전시(殿試)나 회시(會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도시[都試]  한(漢)나라 때 열병(閱兵)하는 제도로 강무(講武)를 시험하였다. 도시(都試)는 모두 모아 시험한다는 뜻으로, 한(漢)나라의 제도에 매년 가을 여러 재관(材官)과 기사(騎士)들이 모여 무예(武藝)를 시연하고 서로의 기량을 겨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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