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濤淵] 파도와 깊은 물. 물결이 거센 강을 이른다. 소식(蘇軾)의 시 팔월십오일간조오절(八月十五日看潮五絶)에 “오나라 아이 자라면서 거친 물결 우습게 여겨, 이익을 탐해 자신의 목숨 가벼이 여긴다네.[吳兒生長狎濤淵, 冒利輕生不自憐.]”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도연[徒然] 헛되이. 공연히. 쓸데없이. 까닭 없이. 부질없이. 하는 일없이 적적함. 심심한 모양. 다만 ~하다. 헛되다.
도연[道緣] 도가(道家)와의 인연, 즉 선경(仙境) 속에서 양생(養生)을 할 수 있게 된 특별한 인연이라는 뜻이다.
도연[陶淵] 안동시(安東市) 임동면(臨東面)에 있던 폭포로, 뛰어난 경치로 인해 안동 팔경의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지금은 임하댐이 건설되어 수몰되었다.
도연[陶然] 즐거워하는 모습. 한적하고 즐거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모양. 즐겁고 편안한 모양. 흐뭇하다. 느긋하다. 도잠(陶潛)의 시 시운(時運)에 “이 한 잔 둘러 마시고, 도연히 스스로 즐긴다네.[揮玆一觴 陶然自樂]”라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시 경란리후천은류야랑억구유서회증강하위태수양재(經亂離後天恩流夜郞憶舊遊書懷贈江夏韋太守良宰)에 “이곳 백 리의 고을만은 태고 시대처럼 순박하여, 흥겹게 태고 시대의 사람으로 누워 지낸다.[百里獨太古 陶然臥羲皇]”라고 하였다.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도연후지장단[度然後知長短] 재어 본 뒤에야 장단을 알 수 있음. 제 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왕 노릇을 할 수 있는지 묻자, 맹자가 “저울질을 한 뒤에야 경중을 알며, 재어 본 뒤에야 장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물이 다 그러하거니와 그 중에서도 마음이 유독 심하니, 왕께서는 청컨대 이것을 헤아리소서.[權然後, 知輕重 ; 度然後, 知長短. 物皆然, 心爲甚, 王請度之.]”라고 하였다. <孟子 梁惠王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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