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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道韻], 도운사[都運使], 도원[桃源], 도원[陶園], 도원[道院], 도원[道員]


도운[道韻]  도인(道人)의 정취 또는 도인의 풍도를 말한다.

도운사[都運使]  도전운사(都轉運使)로 조선 초 각 도의 공부(貢賦)와 조세(租稅)를 서울로 운송하는 일을 맡았던 관직 이름이다.

도원[桃源]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약칭으로, 전하여 산수(山水) 좋은 선경(仙境) 같은 곳을 이른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의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일찍이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을 만나 그곳에 들어가서, 일찍이 선대(先代)에 진(秦)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그곳에 들어와 대대로 살고 있다는 그곳 사람들을 만나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서 배를 타고 다시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 도화림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도원[桃源]  이상향 또는 별천지를 가리킨다. 도원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진(晉)나라 효무제(孝武帝) 때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복사꽃잎이 어지러이 떠내려오는 시내[도화원桃花源]를 따라 올라갔다가 옛날 진(秦)나라의 학정(虐政)을 피해 들어간 사람들이 숨어 사는 별천지(別天地)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실려 있다. 두보(杜甫)의 악록산도림이사행(嶽麓山道林二寺行)에 “무릉도원 가옥은 단순하여 짓기 쉽고, 귤주 지역 전토는 여전히 기름지네.[桃源人家易制度, 橘洲田土仍膏腴.]”라고 하였다.

도원[桃源]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도원(桃源)이라는 이상향이 그려져 있는데, 그곳에 사는 남녀노소는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한다. 당나라 때 왕유(王維)가 도화원기(桃花源記)를 근거로 지은 도원행(桃源行)에서 “나무꾼이 처음으로 한나라의 성명을 전해 주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진나라 때 옷을 바꾸지 않았네.[樵客初傳漢姓名, 居人未改秦衣服.]”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125>

도원[陶園]  도원은 진(晉)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전원(田園)을 가리킨다.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전원에 장차 풀이 우거지리니 어찌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田園將蕪胡不歸.]”라 한 말이 있으므로 여기에서 빌려온 말이다.

도원[島遠]  즉 섬과의 거리는 앞 표목에서 섬 밑변 중심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도원[悼園]  한(漢)나라 선제(宣帝)가 방계(傍系)로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생부(生父)인 사황손(史皇孫)의 무덤이 있는 광명(廣明)의 성향(成鄕)을 도원이라 하였다.

도원[道院]  도교(道敎)의 도사(道士)가 사는 곳으로, 속세를 벗어난 청정한 곳이라는 말이다.

도원[道員]  관명(官名)이다. 청(淸) 나라 때 절강성(浙江省)·복건성(福建省)에 전운사(轉運使) 한 명씩을 두었었는데 뒤에 도원(道員)이라 개칭(改稱)하였다.

도원[道原]  남송 때의 학자 유서(劉恕)의 자이다.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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