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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도[桃源圖], 도원동[桃源洞], 도원량[陶元亮], 도원어주[桃源漁舟], 도원일모[道遠日暮]


도원도[桃源圖]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안평대군(安平大君) 용(溶)이 꿈에 무릉(武陵)도원(桃源)에 놀아본 경치를 명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명화이다.

도원동[桃源洞]  전설상의 낙원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때 무릉(武陵)의 어부가 복사꽃이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니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절세 선경이 있었다고 한다.

도원량[陶元亮]  동진(東晉) 시대의 은사 도잠(陶潛). 원량(元亮)은 진(晉)나라가 망하고 송(宋)나라가 건국되었을 때 절의를 지켜 은거하면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시인(詩人)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가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있을 적에 군에서 파견한 독우(督郵)의 시찰을 받게 되었는데, 아전이 도잠에게 의관을 갖추고 독우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하자, 도잠이 탄식하면서 “내가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꺾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굽실거릴 수는 없다.[吾不能爲五斗米折腰 拳拳事鄕里小人邪]”라고 하고는, 즉시 수령의 인끈을 풀어놓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벼슬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즐겼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도원송죽황삼경[陶園松竹荒三逕]  진(晉) 나라 때 고사(高士)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삼경(三逕)은 묵었으나 송국(松菊)은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라 하였다. 삼경이란 한(漢) 나라 때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문정(門庭)에 세 길을 내고 송(松)·국(菊)·죽(竹)을 심었다 한다.

도원어주[桃源漁舟]  무릉도원(武陵桃源)은 별천지의 선경을 가리키고, 어주(漁舟)는 어부의 배를 말한다. 진(晉)나라 때 무릉 땅의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떠내려오는 시냇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가니, 그곳에 경치가 좋고 평화로운 한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진(秦)나라의 폭정을 피하여 숨은 사람들로, 진나라가 망하고 왕조가 몇 번 바뀐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도원일모[道遠日暮]  일모도원(日暮道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바쁘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에 “정현(鄭縣) 사람이 돼지를 팔고 있었는데, 어떤 이가 그 가격을 물었다. 그가 말하기를 ‘길은 멀고 날이 저물고 있으니 어느 겨를에 그대에게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鄭縣人賣豚, 人問其價. 曰: 道遠日暮, 安暇語汝.]”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전국(戰國) 때의 오자서(伍子胥)가 초(楚) 나라를 쳐서 초평왕(楚平王)의 무덤을 파내 송장을 매질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니, 그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기를 “너무 심하지 아니한가.” 하니, 오자서가 답하기를 “해는 저물고 길은 머니 거꾸로 행하고 역(逆)으로 하노라.[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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