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道義] 도덕(道德)과 정의(正義).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덕(道德)이나 의리(義理).
도의[陶猗] 도주공(陶朱公)과 의돈(猗頓)을 이른다. 도주공은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 범려(范蠡)를 가리킨다. 범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신하로 뒤에 정승을 버리고 도(陶) 땅에 은거하여 도주공이라 칭했으며, 화식(貨殖)을 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의돈(猗頓)도 역시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도주공을 찾아가 부자 되는 비결을 물어서 뒤에 왕공(王公)에 비길 만한 부자가 되었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도의[渡蟻] 송대에 송상(宋庠)이 폭우로 위험에 처한 개미들을 대나무 다리를 놓아 안전한 곳으로 건너게 한 고사가 있다. 송(宋)나라 송상(宋庠)과 송기(宋祁) 형제는 문학이 뛰어나 세상에서 대송(大宋)과 소송(小宋)으로 일컬어진다. 이들이 어릴 때 한 호승(胡僧)이 예언하기를 “소송은 천하에 으뜸이 될 것이요 대송도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십여 년 뒤에 호승이 대송을 보고 말하기를 “공의 풍신(風神)이 몰라보게 달라져 흡사 백만 명의 목숨을 구제해준 사람 같구려.”라고 하였다. 이에 대송이 말하기를 “가난한 선비가 무슨 힘이 있어 많은 생명을 구해줄 수 있겠소.”라 하고 말하기를 “내가 사는 집 섬돌 아래 개미굴이 있소. 폭우가 내릴 때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개미들이 굴 주위에 모여 있기에, 내가 장난삼아 대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물을 건널 수 있게 해 주었소.”라고 하였다. 이에 호승이 “바로 이것이오. 이번 과거에서 소송은 장원할 것이고 공도 그보다 못지않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과연 과거에서 소송이 장원했으나 장헌후(章憲后)가 “아우가 형보다 앞설 수 없다.”라고 하여 대송을 제일(第一), 소송을 제십(第十)으로 급제시켰다. <類說 卷47 遯齋閒覽 編竹橋救蟻>
도의[搗衣] 옷을 빨 때 빨랫돌 위에서 방망이로 물에 젖은 옷을 두드리는 것과 다듬잇돌 위에 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사조(謝眺)의 시 추야(秋夜)에 “가을밤에 귀뚜라미 울고, 남쪽의 이웃집들 다듬이질소리 급하네.[秋夜促織鳴 南鄰搗衣急]”라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시 춘회(春懷)에 “장안의 하늘에 조각달 떴는데, 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 들리네.[長安一片月 萬戶搗衣聲]”라고 하였다.
도의공리관[道義功利關] 도의(道義)와 공리(功利)의 한격(限隔)이 되는 문.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에 “그 의(義)만 바르게 하고 이(利)는 꾀하지 말 것이요, 그 도(道)만 밝히고 공(功)은 계교하지 말 것이다.[正其誼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라는 그의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서 주희가 “동중서가 수립한 것이 매우 높으니, 후세 사람들이 옛사람보다 못한 까닭은 도의와 공리의 관문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仲舒所立甚高 後世所以不如古人者 以道義功利關不透耳]”라고 평한 말이 근사록(近思錄) 권14 관성현(觀聖賢)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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